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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 오바마" "마음이 열린 카스트로"

중앙일보

입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간) 만났다. 미국과 쿠바 양국 정상으로는 지난 1956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폴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의 회담 이후 59년만이다. 회동 장소는 파나마의 파나마시티로 당시와 같다. 이번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미국이 쿠바를 초청하며 양자 회동이 이뤄졌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의 59년 쿠바 혁명으로 63년 국교가 단절됐던 양국이 지난해 12월 전격적인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며 이뤄진 만남이다. 두 정상은 2013년 12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만나 악수를 했지만 정상 간의 일대일 회동으로 맞잡은 악수는 이날이 처음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회동은 한 시간여 가량 진행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동은 역사적인 만남”이라며 “우리가 서로 소통할 때 카스트로 의장이 보여준 열린 마음과 예의에 감사한다”고 칭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미래를 향한 길에 있다”며 “우리가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우리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서로 (함께) 나눌 게 더 많다”고 화답했다. 그는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등 오바마 대통령이 거론한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단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내일은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일지라도 오늘은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OAS 회의 연설에서 카스트로 의장은 책상을 치기도 하며 피그만 침공 등 과거 미국의 쿠바 압박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에겐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과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압박 정책에는)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은 “(압박정책을 구사한) 10명의 전임 미국 대통령 모두가 쿠바에 빚이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빚이 없다”고도 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정직한 사람”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도 읽어봤는데 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삶을 존경한다”고까지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냉전은 오래전에 끝났고 솔직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갈등에는 관심이 없다”며 “미국은 과거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미래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동 후 “이번 회동은 미국과 쿠바 관계뿐 아니라 이 지역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08년 7월 한 토론회에서 “이란·쿠바·북한의 지도자들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며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이들을 벌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에겐 지난해 10월 비밀 서한을 보내 이란 핵 합의를 만들어냈다. 쿠바와는 국교 정상화를 단행하며 카스트로 의장과의 회동이 성사됐다. 남은 적대국 지도자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정도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2년 가까이 남은 임기 동안 김 제1위원장과 만나거나 통화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핵ㆍ미사일을 놓지 않은 채 미국과의 대화나 북미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것을 수용할 수는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쿠바와 북한은 모두 사회주의 국가지만 북한은 쿠바와 달리 미국과 주변국에 핵ㆍ미사일로 명백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이란은 핵 프로그램 협상에 관심을 나타낸 반면 북한은 6자회담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으로 두 정상은 국교 정상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보여줬지만 여전히 난제는 남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회동에서 대사관 재개설 날짜를 정하지 못한 것은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반발도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의 복병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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