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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묻고 서상현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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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
신인섭 기자 중앙일보 선임기자/부국장
서상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장(왼쪽)과 복거일 작가가 중국 대륙 철도 연결사업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 소장은 서해 열차 페리로 중국 철도와 직접 연결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에 한반도와 유럽을 철도로 잇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로 중국 정부가 동아시아와 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선언하자 SRX 사업은 더욱 현실적 구상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비우호적 태도를 드러내면서 SRX 사업은 나아가지 못했다. 며칠 전 북한은 5월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SRX의 전망이 더욱 어두워진 셈이다. 북한 경유 철도 노선에 대한 대안으로 일찍부터 논의된 방안은 서해를 가로지르는 열차 페리다. 조선과 해운의 전문가인 서상현 박사에게 서해 열차 페리를 이용한 SRX의 전망을 들어본다. 아울러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몫을 하는 조선 및 해양 플랜트 산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서해 열차 페리로 중국 대륙 철도와 연결해야

-SRX 사업은 멋진 구상입니다. 그러나 사업이 워낙 방대하고 국제적인 만큼 여러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 문제는 철도가 북한을 지난다는 사정입니다. 북한 철도가 노후화되어서 실질적으로 새로 부설해야 한다는 사실도 큰 문제지만, 북한의 정치적 불안과 적대적 태도는 더 큰 문제입니다. 오래전부터 대안으로 거론된 서해 열차 페리는 어떤 사업입니까.

 “우리나라와 유럽을 연결하는 SRX는 궁극적으로 유라시아 횡단 철도망에 접속해야 합니다. 그 철도망은 맨 동쪽에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있고 그 서쪽에 중국을 거치는 노선 셋이 있죠. 만주를 거치는 노선(TMR), 몽골을 거치는 노선(TMGR), 그리고 중국 북부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노선(TCR)이죠. 언젠가는 우리 철도가 이 네 노선 모두와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빠른 발전과 비중을 생각하면 TCR이 중심 노선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시베리아를 경유하는 다른 노선들과는 달리 TCR은 인구가 밀집한 중국 중심부를 지나므로 경제적으로 크게 유리합니다. TCR과의 접속은 북한을 거치면 오히려 비효율적입니다. 신의주를 지나 만주 서해안을 돌아서 중국 중심부로 다시 내려가는 노선이라 멀리 돌게 되죠. 열차 페리를 이용하면 바로 서해를 건넙니다. 거리가 훨씬 짧고 경제적이죠.”

 -서해 열차 페리가 경제적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만, 북한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장점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동안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무도한 태도로 우리 기업들과 정부가 얼마나 큰 어려움들을 겪었습니까? 지금도 북한의 일방적 임금 인상 요구로 처지가 어렵죠. 북한이 무슨 핑계를 대고 철도를 막으면 우리는 아주 곤란해질 것입니다. SRX가 서해 페리로 TCR에 연결된다면 그런 위험은 사라지겠죠.”

 -서해 페리는 북한을 지나는 노선들의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서해 페리와 TCR이 주 교역로가 되니 북한이 누리는 지리적 우세가 약화되죠. 만일 SRX의 네 노선이 모두 북한을 지나게 되면 북한은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한껏 누리려 들겠고 우리는 애를 먹겠죠. 중국 정부에서도 서해 페리 방안을 반기나요.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보다 적극적입니다. 자기네가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TCR의 성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2002년에 우리 건설교통부와 중국 철도부가 열차 페리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중국은 2011년 초에 산둥성의 옌타이항을 페리 기항지로 선정했고 한국도 몇 달 뒤에 평택/당진항을 선정했습니다. 옌타이 지방 정부는 그 뒤로 이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고 우리 쪽에선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한 신동식 박사가 줄곧 중국 인사들과 협력해 왔습니다.”

 -SRX가 북한을 지나니 북한은 좋은 패를 손에 쥐었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OSJD 회의에서 한국이 가입하기로 되었는데 북한이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니 한국의 가입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양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는데도 북한이 불참한 것은 그런 계산에서 나왔겠죠. 서해 페리를 TCR에 연결시키는 방안은 북한의 부정적 태도에 대한 좋은 대책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북한 철도의 실질적 재건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큰 이점까지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 신장성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노선에 독일이 정기 열차를 취역했습니다.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나서면 두세 해 안에 서해 페리가 TCR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모든 여건이 좋아도 북한의 철도 재건엔 적어도 5년은 걸리리라고 추산됩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나아져도 북한을 거치는 SRX가 10년 안엔 건설될 수 없다는 얘기죠. 우리의 합리적 선택은 명백합니다.”

 -우리 정부가 서해 페리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정치적 고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여론을 고려해서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늘 마음에 두고 구체적 사업들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은 물론 그 점을 거꾸로 이용하고요. 그래서 구체적 사업들이 정치적 영향을 받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합니다. SRX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SRX 사업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의 단서로 삼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라도 ‘북한 위험’을 사업 계획에 반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체적 수송 노선들을 여럿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유국들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서해 페리는 그런 큰 전략에 부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 노선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북극 항로가 생각납니다. 북극 항로는 한때 큰 관심을 모았는데, 현실성이 있나요.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항로가 유망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결빙 기간이 길어서 상시 운행은 불가능합니다. 혹독한 기후, 짧은 일조시간, 환경 오염의 위험과 같은 제약 요인들도 장애들입니다. 실제로 상선들이 다니려면 러시아 해안에 배들이 들러서 연료를 공급받고 조난했을 때 대피할 수 있는 항구들이 몇 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북극 항로는 아직 현실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북극해에서 석유를 개발하는 사업이 활발해지면 우리 조선 및 해양 플랜트 산업엔 좋은 기회가 되겠죠. 특히 지리적으로 유리한 부산항이 큰 혜택을 볼 것입니다.”

 - 한때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를 지었는데, 근년에 중국에 밀렸습니다.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요.

 “이번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에 세계적으로 많은 배가 발주되었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쳐서 물동량이 줄어들자 선박이 남아돌았고 선박 발주는 줄어들었습니다. 심해에서 석유를 채굴하는 사업의 채산성이 낮아져서 해양 플랜트에 대한 수요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 조선소들이 해양 플랜트 분야에 진출했다 큰 손실을 본 것이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해양 플랜트는 심해에서 석유를 채굴하는 설비라서 극한 상황에서 운용됩니다. 자연히 설계, 제작, 운용, 정비 및 철거에서 많은 첨단 기술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조선소들은 이 분야에 처음 진출했으므로 경험도 없고 기술도 부족했습니다. 그동안 조선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응용하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우리 조선소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경험도 없고 설계 능력이 부족하니 정확한 원가 계산조차 어려웠습니다. 우리 조선소들 사이의 경쟁도 심했습니다. 결국 우리 조선소들이 너무 낮은 값에 응찰한 것으로 드러나곤 했습니다.”

 -대책과 전망은.

 “이처럼 실망스러운 결과는 우리 조선소들이 해양 플랜트 분야에 첫 진출하면서 치른 수업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설계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조선소들의 강점이 건조 능력인데, 설계 능력이 부족하면 설계 회사에 매이고 이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설비의 운용, 정비 및 철거에서도 능력이 향상되어야 높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에 투자해서 기술이 향상되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봅니다. ”

 -그렇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제대로 이루어지나요.

 “해양플랜트 설계엔지니어링센터가 올해부터 활동할 예정입니다. 저희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선 부산에 심해공학수조를 2017년부터 운용할 예정입니다. 가장 깊은 부분이 50m인 이 수조에서 실험하면 보다 정교한 설계가 가능하죠. 해양플랜트의 경제성은 석유와 가스 값의 등락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채산성이 악화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망한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선소들의 건조 경쟁력은 어떠한가요. 중국 조선소들이 우리를 앞질렀는데.

 “우리 조선소들은 전반적으로 설계 및 건조가 어렵지만 부가가치가 큰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해서 소득이 높아진 국가는 노동집약적 분야에서 물러나고 기술집약적 분야를 개척한다는 일반적 추세가 조선산업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한 중국 조선소들은 일반 선박 분야에서 당분간 우위를 유지할 것입니다.”

 -우리 조선소들이 특별히 강점을 지닌 기술은.

 “건조 및 설계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습니다. 특히 가스를 이용한 추진기관의 개발에서 독보적입니다. LNG나 LPG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이 기관을 쓰면 연료를 따로 실을 필요가 없으므로 경쟁력이 높죠. 대형 컨테이너선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크루즈선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크루즈선의 선체를 건조하는 일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루즈선은 바다 위의 호텔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락하고 우아한 생활 환경의 디자인이죠. 그 점에선 우리가 유럽에 크게 뒤집니다. 실은 조선 기술에서 가장 앞선 일본도 크루즈선 분야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서상현 박사는 …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미시간대 선박해양공학과 졸업(선박제어 및 자동화 분야의 연구로 공학박사 취득). 해양연구소 해양시스템연구본부장,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역임. 현재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장. 전자해도, 해양지리 정보 및 위성항법시스템 분야에서 개척적 연구를 수행했음. 대한민국 수역 전자해도 개발에 대한 공헌으로 2001년 대통령 표창을 받음.

[인터뷰 후기] 중국 철도 연결 차기 정권서도 추진해야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들의 시평(time-horizon)이 무척 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적 발명은 오래 걸린다. 그런 발견이나 발명의 실용화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사회 기반시설에 적용하는 일은 당연히 오래 걸린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계나 언론계는 시평이 짧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과학이나 기술에서 나오는 발전들은 사회의 관심을 덜 받는다. SRX와 같은 국제적 사업은 특히 긴 안목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한 정권의 시평이 5년을 넘을 수 없다는 사정이다. 현 정권에서 제안했고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으므로 다음 정권에서 그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사업이므로 빨리 사업의 운동량을 늘려서 다음 정권에서도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데 서 박사와 나는 의견을 같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