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재현의 직격 인터뷰

성완종 변호사 오병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지기 직전 작성한 55자 메모의 파장은 어디까지일까.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박근혜 정부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금액이 빠진 채 리스트에 들어 있던 이완구 총리는 성 전 회장에게서 3000만원을 받은 의혹이 14일 제기됐다. 4·29 재·보선을 보름 앞두고 터져나온 악재에 여당은 “이 총리부터 수사를 받으라”고 했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극단적 발언으로 맞섰다. 여기다 성 전 회장이 사망 전날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 주민에게 드리는 글’이 이날 공개됐다. 성 전 회장은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시했다. 성 전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고, 그가 남긴 리스트의 신빙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의 변론을 담당했던 오병주 변호사를 통해 그동안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초동 오 변호사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오병주 변호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뒷얘기를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성완종 전 회장의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9000억 베트남 건물 매매협상 깨져 검찰 수사 원망”

 “15년 전 충청포럼이 주최하는 학술행사에 같이 참석하면서 친분을 가졌다. 3주 전인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성 전 회장이 ‘검찰에서 (자원외교와 관련해) 수사를 하는데 변론을 좀 도와 달라’고 부탁해 변호사 선임 계약을 했다. 나 말고 다른 곳에서도 같이 변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검찰의 수사 상황은.

 “검찰은 경남기업이 분식회계를 통해 석유공사와 광물공사에서 사기대출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사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검찰이 압수한 자료만도 라면박스로 수십 개는 됐다. 그 자료를 다 봤을까. 성 전 회장은 4월 3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30분까지 16시간 반 정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조사였다. 3일 뒤 성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때부터 성 전 회장이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은데.

 “성 전 회장은 자원외교와 관련해 비리 혐의가 없으면 검찰이 수사를 종결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그칠 기색이 없자 심리적 압박감이 심했던 것 같다. 검찰이 가족들은 물론 현장사무소장의 카드 사용 내역까지 가져오라고 하자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자원외교 비리 혐의는 결국 없었다는 말인가.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석유공사와 광업공사에서 대출받은 570억원 중 상당액을 개인적으로 착복했거나 떼먹었을 거라 보고 수사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분식회계를 통해 신용등급이 좋은 것처럼 꾸며 돈을 대출받은 것은 사기라고 했다. 검찰도 자신이 없었는지 수사를 확대하면서 성 전 회장이 수출입은행에서 350억원을 대출받은 것도 사기라고 밝혔다. 또 계열사에서 5년에 걸쳐 대출받은 189억원에 대해 횡령 혐의를 적용해 영장에 적시했다. 성 전 회장은 대여금에 대해 대출이자를 지급했다. 검찰의 당초 수사 명목과는 다른 것이다.”

 -검찰 수사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가.

 “조사가 시작되기 전 부장검사와 차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때 성 전 회장이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내 이름 석자에 누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표정이 비장했다. 하지만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검찰이 별건수사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세 명의 검사가 교대로 들어와 성 전 회장 한 명을 상대로 추궁했다.”

 -검찰의 별건 수사는 무엇인가.

 “검찰은 성 전 회장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큰아들이 월급 명목으로 11억8000만원을 받은 것을 횡령으로 봤다. 둘째 아들이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4년간 사용한 카드 사용금액도 횡령이라고 했다. 4년간 1억6000만원이니 1년에 4000만원, 한 달에 300만원 정도다. 2007년에 이뤄진 일들로, 자원외교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검찰이 분식회계라고 발표한 9000억원도 과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회계장부상의 분식은 1250억원이다. 1년에 250억원씩 5년에 걸친 것이다. 한 해 매출 1조2000억원대의 기업에서 250억원은 회계착오며, 금융기관을 속일 정도의 분식으로 볼 수 없다.”

 - 경남기업이 자원외교 비리 수사의 첫 타깃이 된 이유는.

 “성 전 회장이 가장 억울해 한 대목이다. 그 많은 기업 중 경남기업이 집중 수사의 대상이 된 배경을 의심했다. 경남기업도 자원외교를 위해 1370억원의 돈을 투자했다. 석유 시추를 위해서다. 석유란 것이 수십 곳을 뚫어서 몇 곳만 나와도 대박이지만 안 나오면 다 회사 손실이다. 경남기업도 340억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 그런데도 검찰이 횡령이니 사기니 하고 몰아쳤다. 누가 투서를 했는지, 제보를 했는지, 진정서를 넣었는지 모르지만…. 성 전 회장은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지역 주민들이 풍문으로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팩트 여부는 알 수 없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견제설 등 확인되지 않은 풍문들이 충청 지역에서 퍼졌다고 함.)

 -검찰 수사를 원망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성 전 회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검찰 수사 때문에 베트남의 건물을 팔지 못한 것이다. 1조5000억원 정도 받을 수 있는 건물을 9000억원에 팔기로 했다. 이 협상만 해결되면 경남기업이 회생할 수 있었는데 검찰 수사 때문에 매수자가 매입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언론에 수사 상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주가가 폭락하는데 누가 계약을 하겠나.”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 의 실체는 뭘까.

 “성 전 회장과 나는 검찰의 영장 청구에 대비하기 위한 쟁점을 놓고 대화했다. 성 전 회장은 ‘억울하게 수사 대상이 됐다’는 말은 계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성완종 리스트의 내용은 믿을 수 있을까.

 “리스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내가 뭐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성 전 회장의 인품에 대한 설명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교회 장로인 성 전 회장은 25년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왔다. 평소의 언행을 보면 허튼 얘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모함할 분이 아니다. 선량한 기업인으로서 열심히 모범적으로 활동하려고 노력했던 분이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방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주장한 32억원의 비자금이 정치권에 사용됐을 가능성은.

 “구속영장에 적시된 32억원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2007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7년간 비자금을 모은 것이다. 단순 계산을 하면 1년에 4억5000만원이다. 경남기업의 매출 규모에서 1년에 4억원은 대단히 적은 액수다. 한 달에 3000만원 정도인데, 이 돈이 로비용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을까. 성 전 회장도 검찰 조사에서 32억원의 횡령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돈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재무담당 임원이 각종 경조사비로 사용하고 영수증을 첨부하지 못해 횡령한 것처럼 오해를 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직원들의 횡령 의혹이다. 2007년 10월 장부를 보면 100만원, 200만원, 350만원, 500만원씩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식으로 횡령해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아건설 등 계열사에서 대출받은 189억원 중 일부가 로비용으로 사용됐을 수도 있겠다.

 “당시 이 돈도 돌려막기 형태의 대출이었다. 이곳에서 돈을 빌려 저곳의 돈을 갚고, 이자 내고 등…. 돈을 빌리면서 로비 명목으로 쓰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나.”(※검찰은 성 전 회장의 대출금 사용 내역에 대해 추적에 나설 것으로 알려짐.)

 - 리스트 입증할 추가자료가 있을까.

 “리스트 부분은 본인이 있으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쪽으로 전개됐을 텐데…. 자기의 억울함이나 진상을 밝히려면 은연중에 뭔가를 알려줬을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유추되는 게 없다.”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다 현금으로 줘서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 같은데.

 “현금이라 하더라고 수사기관에서는 계좌추적 등의 방법으로 밝힐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기관에서 잘할 것이다.”

 - 기록한 일정표가 단서가 될 수 있을까.

 “경남기업은 2004년부터 전문경영 체제로 넘어갔다.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 성 전 회장이 횡령이나 배임과 관계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일정표를 구해 법원에 제출하려 했다. 물론 일정표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제출 여부를 놓고 고심했다.”(※일정표는 성 전 회장과 접촉했던 정치인들의 명단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임.)

 -리스트에 대한 소문은 들어봤나.

 “지역 주민들을 취재하면 힌트가 나올 것 같더라. 시의원과 도의원 등 지역 유지들은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검사 생활 20년 이상 했다. 발인장소에 가서 이들을 보니 금방 알겠더라. 검사들도 성 전 회장이 거짓말하는 걸로 보지 않는 것 같더라.”

 -성 전 회장이 자살했을 때 검찰과 유족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다고 하던데.

 “성 전 회장이 삼성의료원에 임시로 안치됐는데 검찰이 유족에게 유류품을 주지 않아 소동이 있었다. 내가 밤 12시쯤 검찰에 전화해 ‘무슨 쪽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 돌려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검찰은 ‘수사 증거가 될 수 있으면 압수할 수 있다’고 말하며 돌려주지 않으려 했다.”

 -혹시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닌가.

 “그런 정황까지는 모르겠고, 유족의 강한 요청에도 거부한 건 사실이다.”

 -성 전 회장 자살 이후 검찰이나 리스트에 거명된 정치인 등에게서 연락이 왔나.

 “전혀 없다.”

 -성 전 회장에 대해 아쉬운 점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지 못한 점이다.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결 처리되는 것이 아쉽다. 나랏돈을 빼돌리는 파렴치한 비리 기업인으로 몰린 점은 대단히 안타깝다.”

대담=박재현 논설위원
사진=강정현 기자

오병주는 …

1956년 충남 공주 출신으로 신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78년 행시에 합격, 한때 옛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81년 사법시험 23회에 합격한 뒤 공주지청장과 대전지검 특수부장 등을 역임하며 22년간 검찰에 있었다. 변호사로 옮긴 직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는 고향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기도 했다. 2010년부터 1년6개월간 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인터뷰 후기] ‘성완종 리스트’ 질문엔 어물쩍 빠져나가

오 변호사와의 인터뷰가 한 시간을 넘기면서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성 전 회장에게 리스트와 관련해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며 답변을 피했다. 자신은 검찰의 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률적 쟁점만 정리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법률가”라는 말도 자주 했다. 자신의 발언이 몰고 올 정치적 폭발력을 눈치챈 듯했다.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공소시효’ 등을 말한 것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 변호사는 “나는 법률적 자문을 한 적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성 전 회장은 “2006년 9월 김기춘 전 대통령 실장에게 10만 달러를 줬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내용의 밋밋함을 느꼈는지 “성 전 회장은 허튼 얘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모함할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의 신빙성을 묻는 질문에서다. 그의 주장처럼 리스트의 비밀은 성 전 회장 본인만이 알지 모른다. 하지만 오 변호사는 “유가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라고 했다. 유가족은 어느 정도 아는 것 같다는 분위기를 남겼다. 그의 사무실에선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인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과거에 보낸 축하난이 유독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