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윤병세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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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기억나는 외교관이 혹시 있으신지? 고려 때 거란과 담판을 짓고 강동 6진을 개척한 서희가 먼저 꼽힐 테고, 조선 초 현해탄을 40번 넘게 건너며 왜구에 납치된 조선 백성 667명을 생환시킨 일본 전문가 이예 정도가 이어 나올지 모르겠다. 아,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 시대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그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할 수 있겠다.

 수천 년을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온 이 나라에 생각나는 외교관으로 한 손을 채우기 어렵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서 이 땅의 역대 왕조들이 주변 강대국보다 (전 세계 어느 왕조보다도) 훨씬 길게 수백 년씩 이어져 온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긴 뒤집어 보면 놀랄 것도 없다. 외교를 바라보는 안과 밖의 눈높이가 다른 까닭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찬란한 외교는 강대국의 몫일 뿐이다. 우리처럼 힘 없고 돈 없는 나라의 외교는 좋게 말해 ‘실용주의’,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 외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 눈에 각인될 아름다운 외교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고 인물도 따라서 없는 것이다. 호란 때 현실외교를 추구하다 온갖 욕을 다 먹고 청나라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최명길을 멋진 외교관으로 꼽기가 불편한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다르다. ‘장수 왕조의 기적’이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는 경이롭게 보이는 거다. 미국의 한국학자인 제임스 팔레 전 워싱턴대 교수 같은 이들이 그렇다. “중국에 강력한 왕조가 있는 시기든 이민족이 침입한 시기든 한반도 왕조가 지속된 반복 패턴은 결코 우연이나 운수가 아니다”고 그는 말한다(하버드 저널). “한국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불리한 지리적 위치가 실제로는 유리하게 기능했던 게 실용외교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얘기를 외교부 장관이 했다가 여론(이라기보다는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게 참으로 딱하다. “미·중 양측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 했던 발언 말이다. 뭘 잘했다고 자화자찬이냐는 건데 최근 우리 외교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건만 해도 참여를 서둘렀다면 중국이 우리 지분을 늘려줬을 거란 생각은 순진하다. 특히 늦어서 북한 지역의 인프라 구축에 기여할 기회를 놓쳤다는 비난은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을 왜 안 마셨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중국이 낙후한 중국 서부 지역을 놔두고 북한에 우선 눈을 돌릴 거란 생각은 가당찮다. 한국이 (당초 예상만큼의) 높은 지분을 차지할 거라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이고, 북한 지역 개발도 중국을 설득해 차차 해나가면 되는 문제다. 영국의 도움이 컸지만 그만하면 미국 체면도 세워주고 실리도 얻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는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그건 구입 아닌 배치의 문제였다. 주한미군이 자국군 보호를 위해 한반도에 배치하면 그만인 거다. 우리야 더불어 보호받는데 일부러 거부할 필요가 없고, 중국이 반발하니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전략적 모호성’이 맞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입으로 떠들어 모호함이 사라진 게 문제였다. 여당이 나서 의원총회를 여는 건 최악의 오버였다. 어느 나라에서 전략무기 배치를 다수결로 결정하느냔 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대통령 눈치만 보며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지 못한 점이지만 아베 정권의 도 넘는 행동을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윤병세 장관의 잘못은 끝까지 말없이 나가지 못했다는 거다. 억울함도 있고 조직을 추스를 필요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고 반응하면 외교가 정치가 된다. 말보다는 북핵 등 해야 할 일이 더 많잖은가 말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사학자 윌 듀랜트는 말했다. “아무 말 안 하는 게 외교술의 절반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