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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반값 중개수수료 어떻게 볼 것인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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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논쟁의 초점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내리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강원·경기도에 이어 인천에서도 이르면 4월 초부터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의 주택을 매매할 때 중개수수료 상한을 기존의 0.9%에서 0.5%로 낮추는 등 ‘반값 복비’가 시행될 전망이고 다른 지자체들도 조례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게 ‘상한요율’이냐 ‘고정요율’이냐다. 소비자단체 등은 요율의 상한만 제시해 협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개업계는 요율을 고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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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요율’로 서비스 경쟁 유도를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소비생활연구원 원장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지난 2일 부동산 중개보수 조례 개정안을 심사 보류했다. 하지만 경기도의회는 지난 19일 본회의를 열고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낮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정부 개편안의 가장 큰 수혜 지역으로 여겨졌던 서울에서 조례 개정안 처리가 파행을 겪으며 이사철을 맞은 소비자들만 조례 개정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됐다. 조례 개정이 이루어졌다면 오는 4월 3억원 아파트 전세 거래를 하는 소비자는 중개수수료를 최대 120만원 절약할 수 있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마련한 조례 개정안은 정부의 권고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 개편안은 매매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임대차 3억원 이상 6억원 미만 구간의 주택에 대해 중개보수 상한요율을 기존 0.9%, 0.8%에서 각각 0.5%, 0.4%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매매보다 임대차의 중개수수료가 높았던 왜곡현상을 바로잡고,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가 처음 마련된 2000년 당시 1% 내외에 불과했던 고가 주택 구간을 현 부동산 시세에 맞게 새로이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기준 매매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세대 수는 서울 16.6%, 수도권 7.1%에 이르고 있으며, 전세 또한 3억원 이상 6억원 미만 세대 수가 서울 25.4%, 수도권 10.6%에 해당한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2인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의 3억원 미만 전세 아파트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더 이상 해당 구간 주택 거주자들이 소위 ‘부자’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는 현재 협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의회 조례 개정안의 경우 최고가 구간 외 모든 구간을 고정요율로 변경해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할 경우 소비자는 서비스의 특성·종류·질 등에 상관없이 정부 개정안을 기준으로 해당 구간의 최고 요율이었던 상한요율을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보수로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정부 개편안의 상한요율 0.5%이면 0.5% 범위 내에서 소비자와 공인중개사 간 협의를 통해 수수료가 더 낮아질 수 있으나 협회 주장대로 0.5% 고정요율이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든 해당 비율만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소비자와 공인중개사 간 협의를 배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의 서비스 경쟁도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서비스 경쟁이나 소비자와의 협의는 도외시되고 어떤 상황이든 정부 개편안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협회 측에서는 요율 협의에 따른 분쟁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분쟁을 없애자고 현재 조례안에서 가장 비싼 요율로 중개보수를 고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고정요율이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소비자 이익을 제한하는 등 경쟁 제한성이 있으므로 상한요율제보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은 주민들의 이익과 복지를 등한시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어야 할 조례 개정을 보류한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했다면 이는 본 회기가 시작되기 전 이미 논의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조례 개정안의 원활한 처리를 촉구해 온 소비자단체들과 달리 서울시의원들은 그간 단 한 차례도 소비자단체에 의견을 물어온 적이 없다. 이사철에 소비자들의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지 못한 채 뚜렷한 이유 없이 본회의 상정을 보류한 것은 시민의 대표자로서 무책임한 행태라고 볼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가 주민의 복지와 이익을 대변하는 현명한 조례 개정안을 이른 시일 내에 처리해 주길 기대한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물가감시위원회 공동위원장·한국소비생활연구원 원장

분쟁 막으려면 ‘고정요율’이 최선

이해광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부동산 중개보수(수수료)는 소비자와 공인중개사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방안이 제도화돼야 한다. 업계는 최저 수준의 요율에서 다시 협의하는 방식은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며, 요율은 반드시 고정화해 소비자와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주택 중개보수의 상한요율(협의요율)과 고정요율로 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달 5일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가 국토교통부 권고안인 고정요율로 수정하는 내용의 주택 중개보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후 서울시·세종시·전라북도·충청북도 등이 시·도의회 논의 과정에서 좀 더 의견 수렴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심의 보류 및 자체적인 간담회와 공청회 등을 개최해 금번 주택 중개보수 개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중개보수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정부 역시 업계와 충분한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중개보수 개편에 대한 논의를 지자체에 떠넘겼다. 대략 서울의 9~10%, 경기도는 5%가량의 극소수 부자들에게만 중개보수 인하 혜택을 줬음에도 모든 국민이 반값 인하의 대상인 양 여론을 호도했다. 더욱이 중개보수가 인하되면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된다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도 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고정요율과 관련해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소비자의 가격 협상권을 뺏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러나 소비자단체와 달리 소비자들도 공인중개사와의 분쟁 해소를 위해 고정요율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소비자원 등의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2012년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고가주택 및 주택 이외 중개수수료의 협의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63.9%가 찬성했다. 실제 주택 매매를 경험한 소비자의 경우 찬성 의견이 70.2%로 더 많았다. 2013년 경기개발연구원 자료에서도 구간별 정률 수수료에 대해 응답자의 66.4%가 찬성했다. 고정요율 도입을 찬성한 데는 ‘요율 협의에 따른 분쟁 방지’가 주된 이유였다. 2015년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DNA를 통해 조사한 자료 역시 77.4%가 고정요율을 선호했다.

 고정요율에 대한 또 다른 논쟁은 소비자 부담이 늘고 가격 담합의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행 부동산 중개수수료 요율표에는 매매 6억원, 임대차 3억원 미만의 구간별 한도액이 설정돼 있어 고정요율로 전환한다 해도 중개보수 인상 효과는 없다.

 2000년 중개수수료 요율 구간을 9단계에서 4단계로 개편할 당시 연구 용역기관이었던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실제 적용되는 요율을 반영해 개편안을 마련했다는 것은 이미 요율이 관행적으로 고정화돼 있음을 방증한다.

 상한요율을 고집할 경우 구간별로 정해진 요율을 초과해 받아선 안 된다는 개념보다 소비자들은 상한을 곧 협의·협상 문구로 인식하고 임의로 낮은 금액을 주려고 해 분쟁을 더욱 촉발시킬 것이다. 고정요율은 최소한의 분쟁 예방을 위한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

 더욱이 2000년 4만5000여 명에 달했던 개업 공인중개사는 이제 8만5000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공인중개사도 34만 명 이상 배출됐다. 그야말로 부동산 중개업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공급 과잉 시장이다. 가격 담합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일부 중개사무소에서는 중개보수를 할인해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에서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부동산 중개업계만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고정요율이 가격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기우(杞憂)다. 소비자와 공인중개사의 중개보수를 둘러싼 분쟁 방지 및 중개 서비스 품질에 대한 자유로운 경쟁 유도 등 긍정적인 효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고정요율은 원활한 부동산 거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이해광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