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곡 성재휴 화백이 ‘현대화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일중 김충현 선생이 현판을 써줬다. 당시로서는 ‘현대’라는 이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박명자(72) 회장이 1970년 화랑 개관 당시를 돌아봤다. 현대화랑 개관 한 해 전에 태어난 차남 도형태(46) 부사장은 “초등생 때 연중무휴로 일하러 나가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화랑 지하 카페에서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었다”고 말했다. “당시 화랑 뒷방은 화가와 문인들의 사랑방이었고, 3층에서는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계간 ‘화랑’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현대화랑은 풍요의 시기에 새로운 취향을 주도했다. 화랑과 함께 성장한 도 부사장은 뉴욕대에서 미술(studio art)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했다. 백남준 작업실을 드나들며 현장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작품을 실은 트럭을 직접 운전해 아트 바젤에 출품한 이래 화랑 경영에 참여한 지 17년째다. 그는 “화랑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미술은 끊임없는 기다림이다. 우리는 삶의 일부를 공유하며 인연을 쌓아갈 뿐이다. 가장 오래된 화랑으로서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신진 및 덜 조명된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