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이없는 조희연 '촌지 동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19일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왼쪽 둘째)과 회원들이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불법찬조금 및 촌지 근절 대책’에 항의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서울 한 초등학교 임모(36) 교사는 최근 교사 회의에서 동료 교사와 1분5초 분량의 동영상을 지켜봤다. 서울시교육청이 촌지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제작한 동영상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홀로 울고 있는 학생이 동영상에 등장했고 이어 학교 복도, 교실, 주차장에서 촌지를 주고받는 교사·학부모의 모습이 이어졌다. 교사와 학부모는 손을 맞잡고 크게 웃다가 카메라가 비추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임 교사는 “동영상을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료 교사도 모두 ‘혹시라도 학생들이 볼까 무섭다’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우는데 … 교사·학부모 웃으며 봉투 주고받다 들키자 화들짝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홈페이지 등에 올린 ‘촌지 근절’을 위한 홍보 동영상. 교실에서 울고 있는 초등학생(왼쪽)과 함께 교실에서 촌지를 건네고 들키거나 외제차 뒤에서 금품을 주는 학부모와 이를 받는 교사의 장면이 나온다. [동영상 캡처]

 지난 16일 학부모 총회를 연 서울의 한 고교에선 이 학교 교감이 학부모들에게 동영상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교육청의 홍보 동영상을 보면 교사는 탐욕스러운 늑대고 학부모는 교활한 여우처럼 그려져 있지만 학교 현장은 그렇지 않다. 촌지를 절대 받지 않으니 부담 갖지 마세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부모가 촌지를 가져왔는데 선생님이 한사코 사양해 돌려보내며 서로 웃는 동영상을 만들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시교육청이 제작해 학부모 및 교원 연수 때 활용하라고 배포한 촌지 수수 동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청렴 서울교육’이란 제목이 달린 이 동영상은 교사와 학부모 대역 모델을 세워 학교에서 촌지를 수수하는 장면을 연출한 뒤 “서울시교육청이 청렴 무결점 운동을 펼칩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로 일벌백계합니다”란 내용을 담았다. 교사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청렴 운동을 벌인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동영상을 본 교사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터뜨렸다. 초등학교 진모(54·서울 강서구) 교사는 “교사와 학부모를 비열하게 묘사하고 있어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초3 학부모 이모(40·서울 서초구)씨는 “교사 전체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없다. 촌지가 여전한데 안 받으면 그만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자극적인 내용이라 학부모 입장에서도 보기가 거북하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일부를 전체인 양 호도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당초 이 동영상은 지난해 12월께 제작됐다. 그러다 시교육청이 지난 17일 시내 초·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이 동영상을 학부모 및 교원 연수 때 활용하라고 요구하면서 이 동영상이 학교 사회에 퍼졌다. 조희연 교육감이 학부모에게서 단돈 1만원을 받은 교사도 징계하고 촌지 교사 신고자에게 최대 1억원의 신고보상금을 준다는 촌지 근절책을 발표한 뒤 이 동영상이 홍보용으로 활용됐다. 조 교육감의 촌지근절 방안은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보다 처벌 강도가 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영상을 활용하라는 공문을 보낸 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는 “매년 초 촌지 근절 대책 공문을 학교에 보내는데 동영상 교육을 하면 효과적일 것 같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 교육감의 사과를 요구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 대다수 교육자를 잠재적인 촌지 수수자로 낙인찍었다. 교사의 자긍심을 짓밟는 촌지 근절 대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김기환·신진 기자 khkim@joongang.co.kr
[영상 유튜브 서울특별시교육청 채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