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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장·군수님도 세무조사를 한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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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우리나라에서 세무조사는 당연히 국세청의 전담 업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전 한 식사 자리에서 올해부턴 전국 226곳의 시·군·구(기초자치단체)도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알아보니 진짜 그랬다. 국회가 2013년 말 지방세법을 개정하면서 기업들이 내는 지방법인세(법인세의 10%)의 징수권을 국세청에서 각 기초자치단체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지방재정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란다. 취지는 그럴듯했는데 법을 만든 정부나 심의한 국회 모두 깜빡한 게 하나 있다. 징수권을 부여하면 법리상 자동적으로 세무조사권도 따라간다는 사실 말이다. 당시 국회 안전행정위에서 심의를 했던 한 의원에게 물어보니 “솔직히 기초자치단체가 세무조사까지 할 수 있게 된다는 점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부끄럽지만 당시 언론도 그런 걸 까맣게 몰랐다.

 개정된 지방세법은 2014년 법인소득분부터 적용된다. 지방법인세 납부 시한이 4월 말이니 이번 5월부턴 기초자치단체의 세무조사가 가능한 셈이다. 최근에야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은 망연자실이다.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세청은 추징금을 걷어봐야 자기 조직과는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 반면 지자체는 세무조사 추징금이 고스란히 지자체 예산으로 잡힌다. 가뜩이나 세수 부족에 허덕이는 지자체들이 세무조사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전국적으로 지자체끼리 추징금 징수 경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기업들 입장에선 국세청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이젠 시장·구청장·군수까지 ‘절대갑’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게다가 지자체장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다.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특정 기업에 압력을 넣기 위해 세무조사를 악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중앙당이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징벌적 세무조사를 지시할 수도 있다. 더 웃기는 건 각 지자체가 자기 관내에 있는 지사뿐 아니라 본사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에 50곳의 지사가 있는 대기업이라면 이론상 1년에 50번의 세무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이래서야 기업이 어떻게 안 망하겠나. 행정자치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초단체의 세무조사를 3년간 유예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는 권고 사항에 가까워 지자체가 말을 잘 들을지 의문이다. 눈앞으로 다가온 세무조사 대란을 막으려면 국회가 빨리 지방세법 재개정안을 만드는 게 순리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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