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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AIIB에 담긴 시진핑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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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국가 지도자의 꿈은 왕왕 그 나라의 꿈이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을 보면 중국의 꿈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15일 시진핑은 브라질의 포르탈레자에 있었다. 거기서 그는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 브릭스(BRICS)의 나머지 4개국 정상과 함께였다. 다른 정상들 표정도 환했지만 시진핑은 특히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진핑은 이날 나머지 정상들과 중국 주도의 신개발은행(NDB) 설립에 합의했다.

 NDB의 목표는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 지원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NDB는 미국의 금융패권에 던지는 시진핑의 도전장이다. 미국은 1944년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의 한 호텔에서 기축통화국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때 만든 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세계은행과 IMF는 이후 미국의 양대 신기(神器)로 불리며 미국 금융패권의 상징이 됐다. 시진핑은 이날 그런 미국의 상징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전후 70년 누구도, 어느 나라도 언감생심 하지 못한 일이다. 시진핑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이날, 이 사진은 중국의 금융 패권 출범을 알리는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사진을 찍기 열흘 전, 시진핑의 발은 서울에 머물렀다. 지난해 7월 3일 시진핑은 한국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요청했다. 두 달 전인 5월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통해 공동선언문에 ‘한국의 AIIB 참여’ 내용을 넣자고 미리 제안해둔 터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예 의제에서 뺐다. 미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NDB가 세계은행의 대항마라면 AIIB는 미국·일본이 쥐락펴락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대항마다. ADB는 미국의 양해하에 일본이 주도한다. 66년 설립 이래 9명의 총재를 모두 일본이 가져갔다. 일본 입맛대로 지원국과 대상·조건을 정하기 일쑤다. 일본 기업의 아시아 진출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도 많았다. 시진핑은 3년 전 ADB에 기여금을 더 낼 테니 우즈베키스탄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자고 했지만 미국·일본은 허락하지 않았다. 인권 문제를 이유로 삼았지만 속내는 중국 견제였다.

 시진핑이 아예 새 국제금융기구, AIIB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NDB가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했다면 AIIB는 중국의 안방에서 출범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성도 크다. 그만큼 시진핑이 들인 공도 많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 A는 “시진핑이 AIIB 구상을 공식 발표한 것은 2013년 10월이지만 한국에 의향을 타진해 온 것은 2012년, 이명박 정부 말이었다”고 말했다.

 “AIIB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드레스덴 구상과 통한다. AIIB에 참여하는 대신 중국에 북한 지원을 위한 동북아개발은행 참여를 요구하자는 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시진핑 방한을 앞두고 갑자기 미국이 완강하게 반대했다. 대통령도 무척 난감해했다. 우리는 미국 눈치만 봤다.”

 시진핑은 이런 우리의 형편과 속내를 꿰고 있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차관보가 사흘 전 “한국이 AIIB 창설 멤버가 되길 바란다”며 강하게 압박한 데는 여러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반대 압력에 맞불을 놓아 한국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전략적·경제적으로 보면 우리의 AIIB 참여는 당연지사다. 남은 건 정치적 고려뿐이다. 이땐 역사가 거울이 된다. 멀지 않은 과거,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당시 IMF와 미국은 어땠나. 처절한 긴축과 가혹한 구조조정을 한국에 강요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위장된 축복’이란 말장난은 두고두고 한국 경제, 한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미국의 금융 독과점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대 베이징, IMF·ADB에 맞서는 NDB·AIIB가 하나씩 더 있는 게 낫다. 미국의 맹방 영국은 물론 프랑스·독일·이탈리아까지 속속 AIIB 참여를 선언하고 있잖은가. 지금 우리가 봐야 할 건 오바마의, 시진핑의 눈치가 아니다. 세계 금융의 미래, 한국 경제의 미래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