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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대리석 덩어리에 사람·가족의 온기를 불어 넣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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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15면

서울미술관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것은 조각품 ‘환생(2010)’이다. 등딱지는 사람 같고 모양새는 거북이 같다.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76)는 “피에트리산타 해변에서 모래무덤 놀이를 하고 노는 아이와 엄마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온몸이 모래로 덮여 손발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모래속에서 기어나오는 거북이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돼 이미 국내에 알려져 있다.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와의 만남

‘저를 간지럼 태우지 마세요’(1990~1994)에 드러난 얼굴과 발은 딸 페데리카의 그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소녀의 편안한 얼굴과 발을 백색 카라라 대리석으로 부드럽게 표현해냈다. ‘소식’(2011)은 또 어떤가. 임신한 며느리의 볼록한 배가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데, 자세히 보면 작은 발 하나가 톡 튀어나와 있다. 뱃속에서 발길질하는 첫 손자를 향한 사랑의 표식이다. “어머니의 배라는 것은 태아에게는 우주와도 같은데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뒷면을 오랜 시간을 들여 파냈습니다. 달에 착륙해 첫 발자국을 남겼던 암스트롱처럼 그 행성에 태아의 발자국을 남가기로 했죠.”

이같은 애틋한 가족 사랑의 대척점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의 깊은 호수가 있다. 2차 대전 직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부재는 어린 피노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제’(1965)는 그런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로 길게 뻗은 사각 기둥 주변에는 손과 팔, 여성 가슴의 일부가 파편처럼 돌출돼 있다. 신체 일부만 돌출하는 조각 기법은 피노티의 특징으로 그의 스타일은 이미 1960년대부터 정착됐다.

‘체르노빌 이후(After Chernobyl)’(1986-87), white Carrara marble, 178 x 74 x 56 cm, 450kg

정치사회적 문제 제기도 그는 빠뜨리지 않았다. ‘체르노빌 이후’(1986~87)는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인류에게 끼친 위험을 통렬하게 경고한 작품. 한쪽으로 휘어 거꾸로 솟아있는 인간 하체의 경직된 모습은 모든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과 비명에 다름 아니다.

망자를 미라의 형태로 만들어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이집트 신 아누비스는 그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소재다. 자칼의 머리를 갖고 인간의 몸통을 지닌 아누비스를 통해 작가는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을 교묘하게 연결해낸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망자의 혼을 태우고 나일강 위를 떠가는 카론의 배를 형상화한 ‘나일강’(1972)에 이어 길이 12m 짜리 대작 ‘해부학적 걸음’(1968~69)으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탄생-죽음-환생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연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노티는 “신에 대한 숭배나 환생,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제 자신이 전생에 이집트인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미술관의 또 다른 명소인 석파정은 피노티의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조선시대 한옥인 석파정과 21세기식 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타임머신’(1965~67)은 다가올 미래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다른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도 피노티의 주요한 작품 세계 중 하나다. 귀 조각을 얼굴 위로 표현한 ‘반 고흐에게 바치는 헌사’(2000)나 벌레의 꼬리 부분을 연상시키는 브론즈 ‘카프카에게 바치는 헌사’(1972)가 대표적이다. 22개의 백색 카라라 대리석으로 조각된 ‘셰익스피어에게 바치는 헌사’(1980~84)는 셰익스피어 희극을 만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서로 연관되며 하나의 무대에 표현됐다.

“앞으로는 죽음보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환생’의 연작을 계속 하고 싶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1939~):
이탈리아 베로나 출생. 1966년과 8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탈리아 대표작가로 참가했다. 86년 만투아 궁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파도바 산타 구스티나 성당,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제단 및 동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 초청작가였으며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만든 김영원 조각가를 초청, 201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대규모 2인전도 했다.

▶노벨로 피노티의 ‘본 조르노’:
2월 28일~5월 17일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월요일 휴관. 성인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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