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과 "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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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 들어 민정당이 국민에게 인기가 있음직한 정책을 발표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를 보고 야당에선 선거 선심공세라고 빈정대고 민정당은 국리민복을 위해 집권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닌게 아니라 작년말 이후 무허가건물양성화·공유토지분할· 한시택시시한연장· 가정의례법개정·공한지세대상확대보류· 연탄 값 자율화유보·하도급거래공정화법제정 등 민정당이 스스로 정책을 개발하거나 정부가 추진하려던 일에 제동을 거는 사례가 잦아졌다.
집권당의 정책발표가 많아졌다는 것은 관료들이 세운 시책이 결여하기 쉬운 국민적 시각을 보충한다는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좋은 경향이다. 다만 그 결정이 지나치게 표를 의식한 나머지 정책의 논리와 일관성을 약화시킨다면 문제가 된다.
최근 민정당은 당정협의 끝에 중·고교 수업료를 동결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결론은 불과 이틀 뒤에 문교부에서 수업료 3%, 육성회비 5% 인상으로 발표돼 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문교부는 물론이고 민정당의 정책실무자들도 중·고교 수업료 인상이 금년예산에 계상돼 있는 만큼 올리지 않으면 2백80억원의 결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수업료 5%, 육성회비 10%의 조정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중집위상임위에서 물가에 대한 영향과 명분 때문에 불가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하는 정치인들로선 수많은 학부모의 눈을 의식치 않을수 없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산상의 조치도 없이 인기 있는 선택만 한다면 교직수당인상·교원∵원·낡은교실 및 교사 개수공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공한지세 대상 확대보류와 한시택시 시한연장만 하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이나 본래의 의도를 고려치 않고 표를 의식한 결정이란 냄새가 짙다.
민정당의 공한지세 과세대상을 2백평 이상에서 1백평 이상으로 낮추려는 정부조치에 제동을 걸었는데 서울인구 절반이 제집을 못가진 마당에 빈땅 1백∼2백평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서민일까.
한시택시의 시한연장도 마찬가지다. 한시택시의 시한연장은 절대 불가란 정부의 여러 차례의 공언을 믿고 그에 순응한 사람은 손해를 본 반면 버틴 사람은 이익을 보게된 꼴이다.
정당이 국민저변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본래의 기능이지만 정책 하나하나 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반응에 연연해선 대국을 그르치게될는지도 모른다.
중·고교수업료의 경우도 국민에게 듣기 좋은 동결조치를 취했다가 이틀만에 뒤집혔으니 아예 간여하지 않으니만 못하지 않은가.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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