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 속으로] 게이츠가 반한 그 책 … 경영의 기본은 무엇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경영의 모험
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쌤앤파커스
612쪽, 1만6000원

미국에서 본래 1969년 출간된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s)』은 1970년대 절판돼 서점가에서 찾아 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이 책이 다시 살아난 데는 미국 억만장자 두 명의 공이 컸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다. 특히 게이츠는 이 책이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게 한 주역이다. 당시 그가 “내가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고 극찬하면서 순식간에 미국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는 이 책을 1991년 버핏에게서 추천받았다. 게이츠는 버핏이 20여 년 전 빌려준 책을 들고 이미 작고한 저자 존 브룩스(1920~93)의 아들을 수소문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이 책을 살리는데 적극 나섰다.

 이렇게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 책은 요즘의 통상적인 경영서적과 달리, ‘성공한 사람들의 몇 가지 법칙’식의 해법 또는 처방을 추구하지 않는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의 경제전문기자였던 브룩스의 기사 12개를 모은 것이다. 주간지의 특성상 ‘뉴스’보다 ‘시나리오형 심층분석’에 가깝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경제 분야 사건들에 역사적·사회심리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제록스, 제네럴 일렉트릭, 포드자동차 같은 회사가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 속에서 관련 인물들이 겪은 희로애락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묘사했다.

2012년 미국 아이다호 선밸리컨퍼런스에 참가한 워런 버핏(오른쪽)과 빌 게이츠. 두 사람이 『경영의 모험』을 극찬하면서 이 책은 ‘억만장자의 바이블’로 불리기도 했다. [중앙포토]

 5장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가 게이츠가 가장 유익했다고 소개한 대목이다. 1970년대 초 제록스는 복사기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같은 R&D는 현재 인터넷 통신망의 기반인 이더넷(ethernet)과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록스의 경영진은 이런 연구가 제록스의 핵심사업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상용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업자들이 제록스의 연구를 활용해 제품을 출시했고 큰 돈을 벌었다. 게이츠는 MS도 제록스의 인터페이스 연구를 활용했다고 털어놓으며 “MS를 경영하면서 제록스가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영의 모험』이 주는 교훈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경영의 기본과 가치창출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제품이나 생산 계획, 마케팅 방식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게이츠는 지난해 7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 책의 내용은 오래됐음에도 유효한 게 아니라 오래됐기 때문에 유효하다. 존 브룩스의 책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고, 바로 그래서 시간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한국어판은 원서의 2장이던 ‘에드셀의 운명’을 1장으로 끌어왔다. 원서의 1장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손’은 4장으로 보냈다. 출판사 측은 “1960년대 미국 주식시장 얘기보다 포드자동차의 에드셀 개발 과정이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더 끌 것 같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S BOX] 포드차 야심작 에드셀이 실패한 이유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1955년부터 투자·디자인·홍보 측면에서 총력을 다해 준중형 세단 ‘에드셀(Edsel)’을 개발했다. 하지만 에드셀은 투자를 덜한 다른 모델보다도 판매가 부진했다. 에드셀의 실패에 대한 당시 업계의 통상적인 설명은 과도한 소비자 행태 분석을 했다는 것이었다. 포드 측이 컬럼비아대 응용사회학연구소에 의뢰해 소비자가 자동차로부터 받는 성적(性的) 매력을 분석하는 등 불필요한 조사로 정작 실질적인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브룩스의 시각은 다르다. 포드 경영진이 과학적인 소비자 분석 기법을 활용하는 시늉만 하고 충분히 활용하지 않아 에드셀을 파국으로 몰았다고 분석한다. 모험심만 가득했던 본부장, 학구적 이미지로 비치길 원하던 기획실장 등의 개인 캐릭터가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의 성패는 사람, 인재에 달렸다는 교훈이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