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정치Q] 쌀협상 소신 조일현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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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원래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소신파다. 그는 1992년 고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전국 최연소(37세)였다. 93년 집권하면서 김영삼(YS) 대통령은 국민당의 목을 졸랐다. 대선 때 자신의 표를 뺏아간 정 회장에 대한 분노가 팽팽한 데다 집권당 의원 수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권의 압력은 거셌다. 92년에 당선된 국민당 의원 32명 중 대부분이 민자당으로 갔다. 지역구로는 김동길.조일현, 전국구는 문창모.강부자 의원만 남았다. '최후의 4인'이었다.

사람을 보내도 듣지 않자 YS는 직접 조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점잖게 "나라를 위해 도와달라"고 했지만 사실은 철새가 되라는 압력이었다. 조 의원은 "국회의원이 명분 없이 당적을 바꾸면 신뢰를 잃는다"고 거절했다. YS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며칠 후엔 정 회장이 부탁했다. YS의 압력에 그는 기업마저 위기에 몰렸다. 정 회장은 자신의 당에서 한 명이라도 더 탈당시켜 여당에 보내야 하는 이상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는 조 의원에게 완곡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조 의원은 "죄송하다. 국민당을 지키겠다"며 거절했다.

당장 실적(?)을 올리지 못한 정 회장은 갑갑했다. 그러나 속으론 그런 조 의원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후 총선 때마다 정 회장은 조 의원을 도왔다고 한다. 소신은 우정을 낳는 것인가. '최후의 4인' 중 탤런트 강부자씨와 김동길 교수는 지금 조 의원 후원회의 회장과 고문을 맡고 있다. 의사 문창모씨는 작고했다. 15, 16대 선거에서 낙선한 조 의원은 2004년 당적이 없었다. 그는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당선됐다.

조 의원은 '제한적 소신파'라는 지적도 받는다. 자기가 몸담은 여당이 대연정론이나 혼란스러운 국정운영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추락은 어쩌면 쌀협상 비준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조 의원은 입을 닫고 있었다. 의원총회에서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서 정권과 여당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국민당.쌀협상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소신은 언제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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