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근태 장관 특강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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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김근태 장관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내년 2월의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세 확산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들은 강연.축사 등 주로 간접 방식으로 당원과 만난다. 현직 장관이 본격 정치 행보에 나서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그러다 보니 강연 대결도 잦다. 26일에는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여성위(위원장 서영교) 행사에서 특강 대결을 벌였다.

두 사람의 강연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정 장관이 '대중 스타'형이라면, 김 장관은 '대학 교수'형이다. 방송기자 출신의 정 장관은 말솜씨가 유려하다. 농담할 때와 목청을 높일 때를 잘 안다. 26일 강연에서도 그는 "(여기 서보니) 공무원보다 정치, 이게 좋은 거구나 싶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섞어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강연 내용도 쉽다. 중학생 수준이면 알아들을 수 있다. 어려운 주제는 쉬운 예를 곁들인다. 중국 경제를 설명하며 "부품 2만 개짜리 자동차는 제대로 못 만드는데, 20만 개짜리 로켓은 만든다"는 식이다. 방송 출신답게 강연 시간도 '칼같이' 맞춘다. 다만 너무 '쉽고 친절한' 방식에 대해 일부에선 "콘텐트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자신만의 비전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김 장관 강연의 최대 강점은 '울림'이다. 뻔한 얘기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바쳤기 때문이다. 이날도 그는 "여당 당원.간부들이 중산층.서민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검소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빈곤층 실태를 소개하며 "다시는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는 장내에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반면 김 장관의 강점은 곧 그의 약점이다. 강연 내용도 딱딱하고 어렵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를 인용하거나, 지니 계수(소득 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를 거론하는 등 흡사 대학 강의 같다. 시간도 곧잘 넘긴다. 지난달 17일 여당 전국 여성위 강연에선 예정 시간을 40여 분이나 초과했다. "원론적이고 비현실적"이란 비판도 있다.

◆ 약점을 보완하라=정 장관은 최근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와 함세웅 신부, 이이화 전 역사문제연구소장 등과 접촉했다. 모두 재야 진보세력의 원로들이다. 그의 '선명성'을 의심하는 당내 일부의 시각을 불식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듯하다. 25일엔 정 장관의 싱크탱크 격인 '나라비전연구소'가 전국의 정동영계 핵심 당원 300여 명을 대상으로 경기도 용인에서 1박2일 연수회를 열었다.

김 장관 측 인사들은 대중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26일엔 정봉주 의원 등이 주축이 돼 김 장관을 지지하는 당원 조직인 '국민정치연대'를 출범시켰다. 정 의원은 "온.오프라인에서 (김 장관의) 대중성을 높여 갈 것"이라며 "당내 다른 세력과도 적극 연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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