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우리는 고용하기 위해 사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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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의 사회적 기업
정선희 지음, 다우, 235쪽, 1만원

김동남(46) 짜로사랑 대표. '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만든 두부공장을 이끄는 그는 3년 노숙 생활을 거친 알콜 중독자 출신. 가정불화.이혼의 아픈 과거를 뒤로 한 채 수원의 한 자활후견기관 권유로 2000년부터 경영을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상반기에는 월 매출액 4000만원을 기록했다. 직원은 9명. 모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노숙자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자활근로 시절에는 대강대강 일하는 게 몸에 뱄지요. 책임감은 눈꼽만치도 없었어요. 이제 우리는 정말 잘해야 됩니다. 주춤하면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까요."

김 대표의 말대로 엄격한 품질관리와 끈끈한 직장문화가 특징인 짜로사랑의 성공은 무엇보다'내부의 적'을 이겨낸 승리의 결과. "기계가 나빠서""콩이 안 좋아서"하는 불평불만과 핑계 대는 습성을 떨쳐내기 위해 김 대표는 품질이 떨어지는 두부를 모아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짓이겨버렸다. 2020년 이 회사의 장기 목표에는 직원노후를 위한 실버타운 건설도 포함돼 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에 등장하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은 짜로사랑을 포함해 12개. 청소업체 '늘푸른사람들'은 노원나눔의 집 출신 실직자 6명이 생업자금을 털어 1999년 만들었다. 이밖에 간병 회사 '약손엄마', 파출부 회사 '우렁각시', 도시락업체 '나눔공동체', 폐플라스틱재활용업체 '미래자원'도 포함돼 있다.

사회적 기업은 이윤이 아닌 고용창출이 목적인 공익기업.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 빵을 판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자립을 비즈니스와 통합시킨 새 모델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식의 이 책의 미덕은 담론이 아니라는 점. 열악한 자본.기술.사회지원의 악조건을 이겨내고 인간적 승리를 거둔 사례들이 더 없이 생생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인구는 600만명 선. 경기침체로'빈곤의 대물림'은 계속되고 있다. 대견스러운 점은 12개 기업들이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한 정부의 자활사업을 토대로 성장한 기업들이라는 점. 국내에 사회적 기업은 대략 300여개. 고용인구는 3000명 수준이라서 아직은 초창기에 불과하지만, 잠재력은 크다.

"나는 12개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의 눈가에 고였던 눈물을 잊지 못한다. 돼지저금통을 턴 동전으로 아기 분유를 사러가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해 일으킨 산림사업체 강원임업의 대표, 청소부들은 사람 취급 받지 못한다고 울먹이던 '함께 일하는 세상'의 한 아주머니…. 그들 눈물에는 지난 날의 힘겨움과 함께 아직 진행 중인 도전을 말해준다." 저자는 '사회적 기업'의 저자. 미 캘리포니아대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으며, 기부 활동 정보 사이트(www.giveguide.com)를 운영하고 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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