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8)일본정부의 계산-제80화 한일회담(1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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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정부는 조총련의 북송추진운동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주판을 튀기기 시작했다. 재계출신의 「후지야마」외상은 일본정계에서도 주판질에 능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던 사람이었고 법무성은 한 사람의 교포라도 일본에서 내몰려는 자세를 갖고있었다. 「후지야마」외상이 58년 10월 10일 조총련 의장 한덕수 등의 방문을 받고 북송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취한 유보적 태도는 주판튀김, 바로 그것이었다.
「후지야마」외상이 즉답을 회피한 배경을 나는 이렇게 판단했다. 즉 북한이 정말 북송을 추진하는 것이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그렇지 않고 순전히 진행중인 한일회담을 분쇄하려는 술책일 경우 일본이 협조를 확약한다면 비록 진전이 없다하더라도 가까스로 성사된 한일회담만 깨진다.
또 북한이 정말 북송을 추진할 의도를 가졌을 경우 한일회담을 고려해 협력불가를 섣불리 발설했다가는 한국에 대한 북한카드만 잃을 뿐 아니라 재일교포문제 해결에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는 우를 범할 지도 모른다.
이 같은 일본의 태도는 유태하 공사가 11월 26일 「야마다」외무차관과 만났을 때 선명하게 부각됐다. 유공사가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마다」차관=조총련의 북송추진운동에 관해 오해 없기 바랍니다. 북송희망자들이 꼭 집어서 북한으로 가고자하는 것은 아니며 또 일본정부가 그들을 북한으로 결코 보내지 않을 것임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들은 일본정부가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면 일본에서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일본정부로서는 그들에게 북한으로 가는 것을 허용한다고 선언하고 점 말로 그들이 일본을 떠나는지 안 떠나는지를 관찰해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다시는 그들을 북한으로 귀국시켜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공사=우리로서는 재일교포를 남·북한인 또는 공산·비 공산주의자로 구별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그들 모두를 우리 국민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이 재일교포를 두 집단으로 분류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한국인을 어떤 곳으로 송환시키려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정부로부터 사전양해를 받고 해야할 것입니다.
일본이 이 문제에 관해 강력한 자세를 견지한다면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말썽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야마다」차관=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북송문제에 대해 이 같은 관측기구를 띄웠는데도 현지공관장인 유공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흘려버렸던 것 같다.
유공사로서는 비록 「후지야마」외상이나 법무성이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하나 「기시」수상이 강력한 친한 자세를 갖고 적극적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자세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설마 그런 「기시」수상이 북송을 허용할 리야 만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부도 현지공관의 정세분석이 이 정도이므로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58년 중반기 오오무라수용소에 수용중인 친공계 교포 93명의 북송희망에 대해서 「기시」수상은 막료들의 강력한 반대입장에 봉착해 서면으로 그들을 북송하지 않겠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결코 그들을 북한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차에 걸쳐 임병직 수석대표·김유택 대사·유공사 등에게 확약한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잡는 일이 한일관계에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음을 우리는 간과했던 것이다. 사안자체가 너무 중대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옇든 우리는 패배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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