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합 병원만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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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종합 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은 의료 보험 실시 후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부각되어 그동안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특히 서울대학병원 같은 곳은 겨우 몇분 동안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몇달씩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골에서 올라온 환자들로 이름 있는 종합 병원 근처의 여관들이 성업이라는 것은 이제 진기한 화제도 아니다.
김정례 보사부장관이 17일 상오 메디컬센터에 들러 환자들과 나눈 대화 (어제 중앙일보 사회면)를 보면 종합 병원 환자집중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병원 측이 불친절하고 『기다림에 지쳤다』는 환자들의 호소에 김 장관은 시정 방안을 만들어 내년부터는 시행하겠다는 보사부의 방침을 밝히고 있다.
종합 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료 전달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감기나 몸살 같은 가벼운 병은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하고 전문적 처치를 요하는 병만 종합 병원에서 진료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진료 기관의 수용 태세도 그렇고 환자의 인식이 선뜻 이런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정부의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은 누구 건 아프면 일단 의원, 보건소, 보건지소 등 1차 진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거기서 고치기 어려운 환자는 병원 급 2차 진료 기관에 보내며, 병원에서도 치료 못하는 중병환자만을 3차 진료 기관인 대학 병원에 보내도록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개 동이나 몇개 동을 한개의 단위로 묶어 그 지역 주민은 지역 안의 1차 진료기관에서 우선 치료를 받도록 하고 여러 사람의 전문의가 병원을 개업하는데 편리하도록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다. 가령 내과만 해도 장기별로, 신체의 부위별로 전문의가 있게 마련인데 간 전문의가 전공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일반 내과 환자의 진료 때문에 시간을 뺏긴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 건 국가적으로 건 낭비인 것이다.
더우기 대학 병원은 진료만을 전문으로 하는 일반 종합 병원과는 달리 이 나라 의학 발전의 중추로서의 역능을 해야 할 곳이다.
이런 대학 병원이 시장 바닥처럼 붐비고 의사들이 하루 60명 안팎의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이 나라 의학 발전을 위해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당국의 의료 전달 체계 확립을 위한 구상에 원칙적인 찬의를 표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을 하는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르리란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의 질에 대한 환자의 신뢰도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의사는 환자의 확고한 신뢰를 받을 만큼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당국은 의사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수 교육을 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업 의사들의 보수 교육은 형식에 흐를 우려가 짙고, 특히 기초 의학 분야의 교수 부족으로 우리 나라의 의학 교육은 시련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의학 교육의 부실은 의사의 능력에 대한 일반의 의문을 더욱 깊게 할 가능성이 높다.
동네 병원의 의사들이 마음놓고 찾을 수 있을 만큼 자질이 향상된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하는 종합병원을 찾을 환자들이 훨씬 줄어들 것은 뻔하다.
설혹 3시간을 기다려 3분 진료를 받는다 해도 과연 3분 동안에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은 반드시 해내야 할 작업이지만 까다롭고 어렵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병명도 갖가지인 환자들을 무조건 분산시키는 것만이 대책일 수는 없다. 충실한 의학교육을 비롯해서 실력 있는 의사의 확보, 시설 및 기자재 평준화 등 보다 근본적이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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