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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중국 양회의 스타, 미녀 통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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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의 ‘땅콩 회항’처럼 돈 많은 이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의 신조어가 중국에서도 유행이다.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런싱(任性)’이란 단어다. 5일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에도 등장했다. 지난 2일 뤼신화(呂新華) 정협 대변인 역시 기자회견에서 이 단어를 썼다. 홍콩 기자가 반(反)부패를 질문하자 뤼 대변인은 “런싱”이라고 답했다.

 순간 옆자리에 있던 중국 외교부 통역실 소속 미녀 외교관 장레이(張?·34)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런싱’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영어로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장레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잠시 뒤 장레이는 침착하게 뤼 대변인에게 정확한 뜻을 다시 물었다. 그러곤 변덕스럽다는 뜻의 “capricious”라고 통역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탁월한 선택”이라며 환호하며 장레이를 올 중국 양회(정협과 전인대)의 스타로 꼽았다.

 장레이의 남편 쑨닝(孫寧·34) 역시 통역이다. 2013년 리커창 총리의 첫 내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았다. 지금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통역을 전담하고 있다.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의 통역을 맡은 이후 줄곧 그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고 있다.

 ‘통역의 달인’ 70여 명이 모여 있는 외교부 통역실은 ‘알파걸’의 집합소다. 중국청년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통역의 평균 연령은 31세, 그중 70%가 여성이다. 1998년 이후 총리 기자회견 통역은 쑨닝과 현 외교부 통역실 실장 장젠민(張建民·45), 페이성차오(費勝潮·42)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 맡았다.

 지난해에는 장루(張?·38)가 리 총리 옆자리에 앉았다. 한시와 성어를 즐겨 사용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통역을 속뜻까지 정확하게 번역해 냈던 미녀 통역이다. 외교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그녀는 특히 중국 고전 번역에 강하다. 장루의 한시(漢詩) 통역은 믿을 수 있고(信) 뜻을 드러내며(達) 아름다운(雅)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루는 한시에서 많다는 의미로 쓰이는 아홉 구(九)를 “thousand times”로 번역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통역은 미모의 야오멍야오(姚夢瑤)와 장징(張京)이다. ‘청순 통역’으로 불리는 야오멍야오는 베이징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2007년 공채로 외교부에 들어갔다. 2012년 원자바오 총리의 마지막 기자회견 통역을 맡았다. 지난해 5월 리커창 총리 부부의 아프리카 순방 시 청훙(程虹) 여사의 통역을 담당했다.

 눈망울이 커 중학 시절 인도계 혼혈로 오해를 받았다는 장징은 항저우외국어대와 외교학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2007년 외교부 공채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 2013년 전인대 중 ‘국무원 기구개혁’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3일 리커창 총리의 회견 통역은 ‘런싱’ 통역으로 뜬 장레이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총리 기자회견의 통역은 보통 회견 한 달 전에 선정된다. 이때부터 ‘지옥 훈련’이 시작된다. 3명이 한 조를 이뤄 한 명이 자료를 읽고 한 명은 이를 속기하며 나머지 한 명이 자료를 순차 통역하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총리가 인용할 가능성이 큰 고전을 찾아 미리 자료를 준비한다. 외교부 통역실에는 ‘16자 비결’이 전해 온다. 중국의 영원한 외교관으로 불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남긴 구절이다. “입장은 확고히, 업무는 익숙하게, 정책을 파악하고 기율을 엄수한다(站穩立場 熟悉業務 掌握政策 嚴守紀律).” 완벽하고 적확·유창하면서도 쉬운 번역은 미녀 통역 군단의 필수 소양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총리 기자회견에서 영어 통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국의 굴기(<5D1B>起)가 이어져 중국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는 날 미녀 통역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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