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강령' 시작부터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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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공직자 윤리(행동)강령을 만들려는 생각이 사실 없었다. 공직자 윤리 문제는 부처별로 스스로 토론해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지켜나가게 하자고 했는데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윤리강령을 만들어 권고했다."

지난 18일 전남대 특강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부방위의 공직자 행동강령에 대해 언급한 것이 논란을 빚고 있다. 盧대통령은 역대 새 정부 출범 후에 반복돼온 정치인 사정수사, 공직자 기강잡기 등을 '신정부 증후군'으로 설명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盧대통령은 "부처 내부의 토론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모르나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놀랍게도 제가 당황하고 있다"며 "과거 성공하지 못했던 정책이 다시 제시되고 있어 불안을 느낀다"고도 토로했다.

이날 盧대통령의 발언은 청와대와 정부 간 정책 조율 부재 상황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盧대통령 언급대로라면 각 부처가 자율적인 강령을 만들어 시행해 나가려고 했으나 부방위가 다시 '과거에 성공하지 못했던 정책'을 획일적으로 제시했거나, 盧대통령의 뜻이 부방위 등으로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盧대통령의 지적대로 부방위의 공직자 행동강령에 대해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게 사실이다. 19일 시행에 들어간 행동강령은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자들에게 ▶3만원을 넘는 금전.선물.향응을 받지 못하고 ▶경조사를 알리지 못하며 ▶직무 관련 여부를 떠나 5만원이 넘는 경조금품의 접수를 금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옷 로비' 사건 당시인 1998년 거의 유사한 내용의 공직자 표준행동준칙(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만들었으나 흐지부지됐다. 당시 장관들마저 "공무원들의 경조사 봉투를 강제로 열어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공무원 인사가 있을 때 화분을 못 받게 하면 화훼농가가 다 망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盧대통령의 언급도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시행 하루 전에 '과거 성공하지 못했던 정책'이라고 하는데 어떤 공무원이 열심히 지키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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