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삼자회담」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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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은 언제까지 진부한 「말장난」만 되풀이 할 것인가.
북한은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전환키 위해 남북한과 미국당국의 삼자회담을 내놓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예상돼 왔었다. 올해는 한국의 총선거와 미국의 대통령선거, 일본의 자민당 총재선거 등 중요한 내정문제로 3국이 부산해지게 되어있다. 이럴 때마다 북한은 화·전 양면의 야누스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입증돼왔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제의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북한은 삼자회담을 중공을 통해서 제의했고, 중공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한반도문제에 긍정적인 관심을 표명해왔다. 때마침 중공수상 조자양이 오학겸 외상과 진초 국무원 비서 장을 대동하고 미국을 방문중이며 이들은 「레이건」대통령과 「슐츠」국무장관을 만나 한반도문제를 중요이슈로 다룰 예정이다.
한편 북한의 유엔 주재대표 한시해는 지난4일「케야르」유엔사무총장을 만나 김일성의 친서를 전하고 요담 했고 이틀 뒤인 6일에는「케야르」사무총장이 우리 김경원 대사를 초치하여 한반도문제를 논의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 연말 외상을 경질, 허담 대신 당의 국제문제 책임자이던 김영남을 기용했다. 김영남은 지금까지 북한 대외정책결정의 주역이었고 외국과의 접촉경험도 있을 뿐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허담 보다는 훨씬 적극적이고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국서열도 허담이 19번인데 비해 김영남은 8번이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엔 신뢰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남북한과 미국의 삼자회담은 북한에 의해 남북대화가 일방적으로 중지된 뒤인 79년7월1일 박정희-「카터」공동성명에서 이미 제안됐었다. 그 당시 북한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후 우리측의 정권이 바뀌어 80년1월18일 최규하 대통령이 남북총리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처음에 이에 응하여 몇 차례 차관급 예비회담까지 열다가 이를 일방적으로 중단해 버렸다.
81년1월12일 우리측은 전두환 대통령이 남북한 최고 책임자의 상오방문과 정상회담을 제의했으나 북한은 이것마저 거부했다.
이듬해 2월 우리측은 남북한 당국자·정당·사회단체 대표회담을 제의했다. 이것은 73년 북한이 남북대화를 중단하고 제의한 각계인사와 정당·사회단체 대표회담의 내용까지 수렴, 상당히 접근된 제안이었는데도 북한은 이에 불응하다가 이번에 불쑥 삼자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진의는 과연 무엇인가.
북한은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직접 접촉해보려고 오래 전부터 시도해왔었다. 작년5월의 민항기 사건 때 우리와 중공이 직접 접촉하여 원만히 타결된 후 이를 질시해온 북한이 대미직접접촉에 더욱 적극성을 보였으리라는 점도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평양당국이 진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의 자주원칙을 밝힌 7.4공동성명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재출발해야 할 것이다.
7.4성명은 양측 책임자 사이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온 겨레의 환영과 세계의 주시 속에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발표된 우리의 민족적 노력에 의한 소중한 성과다.
거기서는 통일은 외부의 의존과 간섭을 배제하고 한민족에 의해 자주적으로 달성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는 남북고위당국자간의 직접대화를 여러 차례 제의해온 것이다.
북한이 과연 문제해결에 성의가 있다면 7.4성명과 그 후에 합의됐다가 북한에 의해 중단·폐쇄된 남북 조절위 회담·적십자회담·20회선의 직통전화운용을 재개하고 그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민족의 자주·자결의 원칙에 따라 남북간의 직접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리적 요인이나 국제정치상황으로 주변국의 참여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한만의 직접대화가 도저히 불가능할 때, 그리고 남북간의 합의사항을 실천·준수하기 위한 보장협정에 주변국들이 참여하는 선에서만 고려돼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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