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장애인 연주단체 '충남브라스밴드'창단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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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충남장애인브라스밴드 단원들이 노덕일 총감독(뒷줄 오른쪽에서 셋째) 등 지도 교사들과 포즈를 취했다.

교통사고 때 입은 뇌손상으로 얼굴에 경련이 자주 일어나는 오모(22.여)씨는 처음엔 테너 색소폰의 마우스피스(관악기 중 입술에 닿는 부분)를 입에 대기조차 힘들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습해 이제는 연주 실력이 상당하다.

호른을 연주하는 지체장애인 하승우(23)씨는 허약 체질이라 오래 연주하면 현기증으로 고생한다. 하지만 집에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창단연주회 때 독주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충남장애인브라스밴드'(가칭.cafe.daum.net/cnnrec000)는 국내 첫 장애인 연주단체다. 지난해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일본 자매 지자체인 구마모토 현을 방문했을 당시 장애인들의 관악 연주를 보고 감동을 받아 충남남부장애인복지관(관장 임대혁)에 창단을 요청해 올 1월 팀이 구성됐다. 일주일에 이틀씩 1년 가까이 연습해온 이 단체는 다음달 14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창단연주회를 연다.

이 단체는 지난달 22일 복지관의 바자 행사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일반인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임 관장은 "너무 감격스럽고 대견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모든 게 노덕일(66) 총감독 겸 지휘자와 지도 선생님들의 덕택"이라고 말했다.

한국관악협회 부회장이자 클라리넷 연주가인 노 총감독은 "여러 관악연주단을 길러낸 경험이 있지만 장애인들을 지도해달라는 제의에 선뜻 응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제의 수용을 놓고 고민하던 중 제자인 박태호(클라리넷).어영진(트럼펫)씨 등이 개별 지도를 자원해 용기를 내게 됐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악기를 지도하는 과정은 끈질긴 반복 학습이 필수적이란다. 단원들에겐 '돌아서면 가르쳐 준 걸 잊어 버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씨는 "지난 10개월이란 기간은 극도의 인내심이 요구됐던 '나와의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타악기 마림바를 두드리는 정신지체 장애인 강은미(27.여)씨는 음계를 외우는 게 너무 힘겹다. 합주 때는 다른 악기와 박자를 못맞춰 지휘자인 노 총감독을 애먹인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연습한 덕분에 창단 연주회에서 독주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웠다.

단원은 16~45세의 장애인 23명과 비장애인 4명 등 모두 27명이다. 장애인 단원들은 공주.논산 등 충남권 장애인 가운데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됐다. 악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고 마우스피스를 제대로 입에 물 수 있어야 하는 기준 등이 적용됐다. 비장애인 단원은 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등이다. 간호사 최미영(41.여.플루트)씨는 "장애인들이 혹시 실수를 할까봐 함께 연습하고 있지만 지금은 내가 그들 연주를 따라가느라 급급한 처지"라고 말했다.

노 총감독은 "이젠 장애인 단원들이 가끔 다른 파트의 박자가 틀린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지만 자신이 틀린 것도 알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창단연주회 레퍼토리는 '올챙이송' '반달'등 동요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등으로 구성됐다. 단원들이 특히 좋아하는 곡은 코끼리 등 동물 소리를 악기로 묘사하고, 리듬이 경쾌한 '아프리칸 심포니'다. 이 단체는 내년부터 각종 행사에 참여해 '음악에는 장애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줄 계획이다.

공주=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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