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머스와 기상 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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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옛날엔 마을에 용하다는 노인이 있어서 기상변화를 전망했다.
그 노인은 수십년간 그마을에 살아오면서 나름대로「구름이 산쪽으로 기어올라가면큰비가 온다」든가 하는 일가견을 갖고 기상예측을 했고, 또 그예측은 대부분 드러맞아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었다.
물론 요즈음이야 그런 노인은 없다.
중앙기상대가 전국방방곡곡 ,북한의 기상까지 시시각각 예보해주고 있으니까. 문제는 예보가 옛날의 노인같지 않다는점이다.그것도 하필 중요한 날에 틀려 더큰 상승효과를 주는것이다.
지난 10월1∼3일의 황금연휴를 즐기려던 시민들은 첫날부터 기분을 잡쳤다. 일주일전부터 화창한 가을날씨가 되리라던 중앙기상대의 예보와는 달리 아침부터 비가죽죽 내리는 바람에 ,행락을 떠나려던 사람들은 어린이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했다.
중앙기상대의 전화가 불이난것은 말할것도 없고 신문사까지 불똥이 튀었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크리스머스이브에 말썽이났다.
16, 20일에 발표된 주간예보에서 분명히「눈없는 크리스머스」를 예측했고, 23일하오3시까지도 전국적으로 맑거나 조금 흐릴것으로 예보했던 것과는 달리 24일새벽2시부터 전국적으로 눈이 평평 쏟아지더니 서울에만 8·6㎝나 쌓여 그야말로 화이트크리스머스가 됐다.
이 기억에 남는 두번의「일기오보」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때, 기자는 항상 중앙기상대를 찾아갔다.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예보를 내는 순간까지도 그예보가 틀리리라는 징후는 전혀보이지않았다. 그래도 틀린것은 하늘탓』이라는 것이다.
이젠 일기예보란「틀릴수있는것」이라는 이해를 웬만한 사람들은 다안다.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무작정 욕을 하는사람도 적어졌다.
하지만 일기예보는 시민들에 있어 생활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고있다. 특히 연휴나 이름있는 날의 날씨는 그날의 의미자체를 좌우할수도 있다.
기상의 변화무상, 그것을 십분이해한다해도「맑거나 조금흐리겠다」는 예보가 6시간뒤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조화를 보통사람의 머리로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한 기상관계자의『눈이 안온다고 했지만 결국 화이트크리스머스가 됐으니 오히려좋지않느냐』 는 농담보다는 오보때문에 제설작업에 차질을 빚은 서울시도로과의 고생담이 더욱 실감있게 느껴지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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