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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세원 성우·방송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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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 피천득(1910~2007) ‘이 순간’ 중에서

1993년 KBS1 FM의 클래식 음악 프로 ‘김세원의 가정음악’을 진행하던 어느 날, KBS 교향악단 김동성 총감독님을 뵈었다. 그분은 “작가 한말숙 선생하고 한 달에 한 번 피천득 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하는데, 피 선생님이 내 은사시거든. 선생님이 매일 아침 김세원씨 방송을 들으시는데 한번 같이 뵐까”라고 하셨다. 다음 주 약속된 곳에 가자 피천득 선생님이 구석 자리에 앉아 계셨다. 좀 부끄러워하는 83세 소년이셨다. 선생님은 내게 『피천득 시집 생명』을 주셨다. 다음 날 나는 그중 ‘이 순간’을 뽑아 생방송에서 읽었다.

 옛날엔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감탄만 했지 그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화려하고 찬란한지 간과했었다. 나는 젊었었다. 그런 것은 언제든 리필이 되는 줄 알았다.

 선생님이 이 시집을 내신 것이 83세다. 이 시도 어느 정도 연세가 되셨을 때 쓰신 것 같다. 이후 이 시를 여러 모임에서 읽었다. 어쩌면 인간은 유한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이 순간 순간을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신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단 하나, 사람은 영원하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이라던가?

김세원 성우·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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