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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젊은이 등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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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대학원 졸업 때까지 내 인생 계획에 언론인은 없었다. 댄서 혹은 소설가가 돼 가난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고자 했던 오랜 꿈은 열망보다 재능 부족으로 포기했고, 현실적 대안으로 공연히 가방끈만 키우던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본 신문의 기자 모집공고에 꽂혀 이 길로 오게 됐다. 당시 언론에 대해 완전 무지했다. 한데 해 보니 천직이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요즘 같았으면 나는 신문사에 원서도 못 내봤을 거다. 우리 때는 논문·작문처럼 학교에서 배운 걸로 시험을 봤다. 한데 요즘은 실무적이고 스펙도 화려하다. 내 경우 입사 후에야 알게 됐던 스트레이트·박스·스케치 같은 기사들을 요즘 응시자들은 척척 써낸다. 입사해 한 달이면 배울 것을 미리 ‘열공’해야 한다. 그때 시험이 이랬다면 나는 연필도 들어보지 못했을 거다.

 대기업 공채가 시작되며 회사마다 인재 기준과 선발방식을 내놓고 있다. 뽑는 기업 수도 인원도 줄었고, 원하는 인재상은 난수표 같다. 어느 회사는 스펙보다 인문 소양을 보고, 어떤 회사는 직무역량 평가를 강화하고, 다른 회사는 범용인재보다 맞춤인재를 선호한단다. 시험방식도 자격도 달라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온다.

 이에 청춘들은 자기소개서(자소서)에 마치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쓰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 ‘자소설’이라 한단다. 한데 청춘들이 학점에다 온갖 자격시험, 사회 경험, 봉사까지 하는 와중에 미리 어느 회사 직원으로 살겠다며 촘촘하게 인생 시나리오를 짜서 산다는 게 가능한가. 수시로 변수가 돌출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 본 우리 기성세대는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 않나. 그런데 왜 그런 걸 요구할까.

 솔직히 요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격을 갖추라고 몰아붙이는 건 기성세대의 핑계와 장삿속으로 보인다. 원래 청년을 사회의 일꾼으로 키우려면 사회가 기회를 주고 투자해야 한다. 한데 일할 기회와 성장할 기회를 늘리는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젊은이의 실패를 ‘네 탓’으로 돌리기 위한 장치로 꿈같은 인재 기준을 들이대고 자격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그런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을 등치며 ‘스펙 산업’을 키운다. 과도한 자격을 요구하는 뒤편에서 기성세대는 자격증 장사를 한다. 이 와중에 청년들은 자격증을 위해 교육비와 노력을 들이고, 사회 경험 쌓기 명분으로 ‘열정페이’에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자소설’을 쓰며 기만을 배우고, ‘토익은 영어가 아닌 기술’이라며 본질보다 요령 터득의 기민함이 실력이라는 ‘신화’를 갖게 된다.

 청년들의 열정과 노동력을 엉뚱하고 허무하게 소모시키는 데 몰입하는 사회가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온갖 실무능력 다 검증하고 뽑은 인재가 과거 허술하게 들어온 우리보다 더 훌륭할까. 내 눈에 신입들은 똑같이 미숙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기자로 성장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더 불만이 많다. 오히려 순발력이 떨어지고, 패기와 열정도 부족하고, 끈기가 부족해 툭하면 그만두고 나간다며 성토한다. 청년층은 취업난에 아우성이고, 기업들은 조기 사직해 버리는 청년 인재들 때문에 아우성이다.

 한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 안 될 것도 없다. 신입사원 일이라는 게 그 많은 스펙을 쌓느라 들인 시간과 돈과 노력에 비하면 좀 허접한 게 사실이다. 우리 세대는 모르고 들어와 배우는 데 긴장하느라 회사 생활을 길게 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완성돼 입사한 인재가 허접한 현실에 실망하고 떠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내 젊은 시절, 잡생각으로 방바닥에 뒹구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돌이켜 보면 나를 키운 8할은 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에게 필요한 건 홀로 고민하고 궁리할 시간일 수 있다. 한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럴 틈이 없다. 청년들 스펙 경쟁시키며 등치기 전에 건강한 청년의 모습은 무엇인지부터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됐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