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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과 복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23일자로 학원사태와 관련되어 구속된 학생 1백31명을 포함한 공안사범 3백31명등 1천7백65명에대한 특사, 형집행정지, 가석방및 복권조치를 단행했다.
정부의 이번 단안은 학원소요로 제적된 학생들에 대한 복교의 길을 터준「12·21조치」의 후속조치로서, 우리는 먼저 수많은 반체제인사들을 화합의 대열에 참여시키기 위한 이조치를 진심으로 환영해마지 않는다.
크리스머스를 기해 단행된 이번 조치는 무엇보다 학원정상화를 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복교의 길이 생긴 제적학생 외에 재판에 계류중인 학생사범에 대해 형이 확정되는대로 추가은전을 베풀기로 함으로써 학원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변화를 읽을수 있게 해주고 있다.
12·26을 전후한 격변기의 공안사범에 대해 정부가 온전을 베푼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수있을 것이다.
발표내용을 보면 미문화원방화사건, 남민전사건, 전민련사건등 사상성이 문제된 사건이 있는가하면 김림사건, 아람회사건등 생소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
김대중사건, 광주사태등은 그렇다치고 유신시대의 김마사태, 원풍모방사건, 피복노조사건등도 들어있는것을 보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반목이 있었는지를 실감케 해준다.
제5공화국 출범후 3·1절, 광복절, 크리스머스 때면 일반사면과 함께 국민화합을 다지기 위해 많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감형·복권·가석방등 조치가 취해져 왔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처럼 많은 사례들이 남아있었다니 새삼 우리 세대가 당면한 고민을 보는것 같아 착잡하다.
특사조치를 발표하면서 정부당국자는 이번조치로해서 정부의 진의가 오해되는 일이 없어야하며 학원대책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처벌학생들을 교육외적인 상태에 방치함으로써 악순환되는 학원사태의 간접적 요인을 없애려면 이들을 다시 학원으로 들어오게한뒤 대학의 자율에 맡겨 해결해보겠다는것이 정부의 진의인 것같다.
지금까지의 엄벌주의에서 선도위주로 바꾼 방향전환이 어떤 효과를 가질지 확언하기 어렵고 사태가 악화될 경우 강경대책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담져져 있는 정부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자신감과 이를 바탕으로한 반대자에 대한·이해내지 관용의 뜻은 정당히 평가되어야 할것이다.
이번 은전에 포함된 각종 사례들을 보면 엄금, 반발, 구속, 특사의 악순환은 비단 학원사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원사태 자체가 체제불안요인으로 작용할수 있듯이 하찮게 여겨지기 쉬운 근로자문제가 체제를 위협할만큼 심각한 사태가 될수도 있다.
그러한 일은 누구를 위해서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특히 정부나 정치인의 인식은 중요하다.
엄벌·강경이 문제의 호도일수는 있어도 문제의 해결책일수 없음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사실들이다.
물론 풀려나는 측이 석방이나 특사를 정부의 약화로 여겨서도 안되겠지만 설혹 풀려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더라도 대범하게 대할수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풀려난 사람들이 다시 반발을 하면 정부나 집권층이 과잉반응을 보인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현정부가 이룩한 정치적 안정으로 미루어 과잉반응으로 얻어질 득은 별로 없으리라는게 우리의 소견이다.
현재 우리 현실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것은「한스·켈젠」이 설파한 「실증법적 질서」 의 유지다. 실증법적 질서가 존중되어야만 사회기강은 유지되는 것이다. 법을 초월한 정의만을 주장하면 사회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화·선진화도 그런 사회기반 위에서만이 효과적으로 이룩될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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