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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실 도외시한 '김영란법'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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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가 2일 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법안(김영란법)’ 에 이견을 해소해 3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여야는 이 법이 적용되는 공직자 등의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키로 합의했다. 공직자가 대가성이 없는 돈을 받았더라도 100만원을 넘기면 일괄 처벌키로 했다. 또 관·혼·상·제에 부조(扶助)하는 행위는 대통령령으로 규율하고,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는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법원이 부과키로 했다.

 여야가 법안의 입법 취지와 사회 관행을 절충해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3년 가까이 끌어온 김영란법에 마침내 입법화의 길이 열렸다. 이 법은 ‘벤츠 여검사’처럼 공직자가 거액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길이 없는 현행 형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됐다. 지구촌 176개국 가운데 45위(2012년)에 불과한 국가 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법안엔 문제점이 더 많다. 우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의원과 공무원을 적용 대상으로 한 원래의 입법 취지를 위반한 편법 입법이란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 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에게 1인당 3만원을 넘는 식사를 대접할 경우 대개 불법이 된다. 골프 접대는 물론 명절선물도 사라진다. 식당과 골프장, 선물업계 등 국민 상당수가 종사하는 자영업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및 그 가족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점도 논란이다. 언론인에게는 사회적으로 높은 윤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언론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기업이다. 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최대한의 자유를 누려야 할 존재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제정되는 법에 한 묶음으로 적용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언론을 굳이 끌어들인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이럴 경우 적용 대상이 크게 확대돼 법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또 검찰·경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언론도 이 법을 남용한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연히 이 법이 통과되면 위헌 논란에 휘말려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위헌으로 결정 나면 정치권과 공직사회로선 법이 휴지가 돼서 좋고, 합헌으로 결정 나도 언론을 통제하기 쉬워지는 점에선 나쁠 게 없는 셈이다. 여야는 법안 통과에 앞서 적용 대상을 올바로 재설정해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경제에 주름살을 지울 우려도 줄여야 한다. 공직자로 적용 대상을 한정하고, 정치인 예외 규정은 삭제하며 접대 범위에도 탄력성을 부여해 입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