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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간통죄 위헌'이 씁쓸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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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사회2부장

나는 간통죄 폐지에 찬성한다. 몇 년 전 한 변호사에게서 ‘간통 현행범 체포’ 현장의 적나라함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신고자·경찰관과 함께 현장(모텔 방)을 급습하는 흥신소 직원은 대개 3인 1조라고 한다. 한 사람은 문을 밀어붙이고, 한 사람은 이불을 젖히고, 한 사람은 증거 사진을 찍는다. 변호사는 “여성들이 수치심에 이불을 얼마나 꽉 잡는지 손톱이 빠지는 일도 적지 않다”고 했다. 62년간 유지돼 온 ‘주홍글씨 형법’엔 수많은 남녀의 치욕과 비애가 얼룩져 있다.

 지난주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직후 결정문을 e메일로 받았을 때 가슴이 설렜던 건 그래서다. 인간의 성(性), 그 비루함과 기본권의 경계, 욕망과 제도의 한계를 어떻게 규명하고 제시했을까. 하지만 결정문을 읽으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위헌 결정의 핵심인 재판관 5인 다수 의견은 일곱 쪽이었다.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 의식이 변했고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이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형벌로 강제할 수 없는 것. 그리하여 간통죄 조항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 그동안 지겹게 다뤄졌던 논점들을 다시 소환한 느낌이었다.

 무미(無味)한 법률 용어와 건조한 문장에선 어떠한 울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미사여구나 형용사, 부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 깊이 고민했구나’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핍진성이 응축된 한 구절, 한 문장이면 족했다 . 한 판사 출신 변호사의 독후감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단칼에 위헌으로 폐지할지, 헌법불합치로 국회에 맡길지 고민을 했겠지요. 철학적인 고뇌는 느껴지지 않아요. 단순히 법 조항 하나 날리는 문제가 아닌데….”

 더욱이 이번 결정엔 두 개의 장애물이 있었다. 첫째는 지난 25년간 이어졌던 네 차례의 합헌 결정이었다. 마지막 합헌 결정은 불과 7년 전이었다. 10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결혼과 성에 관한 의식’이 얼마나 달라진다는 말인가. 둘째는 사법에 의한 입법(judicial legislation)에 대한 부담이었다. 간통죄처럼 의견이 갈리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법률에 대해선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존폐를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헌재가 지금까지 합헌 결정을 하면서 “입법권자(국회)의 의지”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헌을 선언하기 위해선 보다 분명한 육성이 필요했지만 결정문은 한사코 ‘정당화의 논리’에 머물렀다. 남아공의 알비 삭스 전 헌법재판관이 제시한 판결문 작성 네 단계(발견의 논리→정당화의 논리→설득의 논리→마음을 울리는 마무리) 중 두 번째 단계다. 삭스는 “재판관으로서 나는 내가 쓴 판결문의 독자들에게 그 결과가 정의롭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블루드레스』). 미국 연방대법원도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워터게이트 사건) “격리는 곧 차별이다”(흑백분리교육 사건)는 결론을 내기까지 치열했던 논쟁과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정의롭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다.

 간통죄 위헌이 진정 역사적 사건이라면 시대를 꿰뚫는 재판관들의 고민과 통찰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법치주의를 풍요롭게 하고 성숙시키는 길 아닐까. 철학이 빠진 결정문은 간통죄 위헌에 콘돔 제조사 주가가 급등했다는 소식만큼이나 씁쓸할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결부시켜 “사상의 자유는 안 되고 성의 자유는 되는 거냐” “한국 보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결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나는 지금의 헌재 재판부가 보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법의 영역에서 보수는 선례(先例)와 입법부 역할을 존중하고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판례를 바꾸면서 설득 노력을 다하지 않는 건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수사하듯이 재판한다” 정도가 지금 헌재에 온당한 지적 아닐까, 생각해본다.

권석천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