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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쓰고 버스 탔더니 손가락질까지 하던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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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무슬림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마스지드에서 모든 신자가 참석하는 합동 예배를 하는데 이를 ‘주마’라고 한다. 2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무슬림들이 기도하고 있다. 오른쪽 위의 작은 사진은 이슬람 중앙성원 전경.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동신(29)씨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한다. 보통 오전 5시쯤 잠에서 깬 박씨는 깔개 위에서 절을 하며 “알함두릴라”라고 되뇐다. 아랍어로 ‘찬양한다’는 뜻이다. 그는 2009년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됐다. 하루 다섯 번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함양 박씨 문원공파’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려고 했다”며 “다양한 종교를 공부했지만 존재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해답을 이슬람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슬람과 아랍어 공부를 위해 모로코에 유학 중이다. 박씨는 e메일 인터뷰에서 “처음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며 “오랜 노력 끝에 아버지는 내 종교를 인정했고, 어머니도 무슬림으로 개종했다”고 했다.

 올해는 한국에 이슬람이 전교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1955년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군의 이맘(종교 지도자) 압둘 가푸르 카라 이스마일 오울루가 한국인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70년대 중동에 건설 노동자로 다녀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국인 무슬림 수가 늘기 시작했다. 90년대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함께 국내 무슬림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64년 3700명이었던 국내 무슬림은 지난해 20만4500명에 달했다. 한국인 무슬림은 4만 명, 외국인 무슬림은 16만4500명으로 추산된다.

 박동신씨와 같은 젊은 토종 무슬림이 요즘 부쩍 늘었다. 기성세대와 달리 외국 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적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도 한몫 했다. 박씨가 한국인 무슬림을 위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은 1000명이 넘는다. 박씨는 “회원 대부분이 대학생”이라며 “평소 종교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다 이슬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무슬림의 대다수는 외국인이다. 전체 이슬람 신도는 16억 명이 넘는다.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이 무슬림인 셈이다. 그리고 무슬림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이민자 집단이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안정국 교수는 “외국인 무슬림들은 이미 한국을 경험했던 모국 친구나 친지·가족의 소개와 같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행을 결심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보통 해외 거주 무슬림 공동체는 개척자→연쇄 이주→가족 이주→무슬림 신세대의 출현 등 4개의 발전 단계를 거친다. 한국은 현재 3단계로 진입 중이다. 최근엔 내국인이 외국인 무슬림과 결혼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슬람 전통에 따라 무슬림은 무슬림과 결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무슬림 부부 사이의 2세를 코슬림(Koslim)이라고 부른다. 서울 이태원과 경기도 안산 같은 무슬림 밀집 지역에선 코슬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슬림 공동체는 마스지드(성원)와 무살라(예배당)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해야 하는 무슬림에겐 종교생활을 위해 마스지드나 무살라 가까이 사는 게 좋다. 마스지드는 서울 중앙성원을 비롯해 전국에 15개가 있다. 전국의 크고 작은 무살라는 60개다. 주로 수도권의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 몰려 있다.

 국내 무슬림은 늘 종교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겪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이슬람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무슬림 김모(35)씨는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건 편견과의 싸움”이라며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집단 때문에 때론 테러리스트로 취급 받는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무슬림은 “히잡(머리 가리개)을 쓰고 버스에 타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심지어 손가락질을 하는 승객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고용허가제 송출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해 달라는 178건의 민원과 제안이 접수됐다. 또 “이슬람 국가의 유학생을 받지 말라”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 승인을 하지 말라”는 등의 무슬림 관련 민원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무슬림을 주위에서 보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선 외국인 범죄 급증의 원인이 무슬림 때문이라며 사회 불안 세력으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지난 24일 10대 청소년 김모군이 IS에 가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뒤론 이슬람을 보는 시선이 더 나빠졌다고 국내 무슬림들은 말한다. 25일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엔 하루 종일 전화가 이어졌다. “김군을 아느냐” “IS와 무슨 관계냐”는 내용이었다. 중앙성원 관계자는 “김군 사건으로 우리가 주목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IS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당분간 조용히 있자는 내부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국내 무슬림은 한국인과 한국사회와 잘 어울리고 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일부 탈레반 지도자급 인사가 한국을 드나든다는 정보는 있지만 국내에서 이슬람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의 외국인 범죄는 주로 중국·베트남·몽골 국적이 저지른다. 이슬람권 국가 국적의 범죄자 비율은 전체 범죄의 0.1%도 안 된다. 안 교수는 “한국사회는 다른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기 때문에 일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긴 수염과 칸두라(남성 복장) 등 이슬람 전통을 유지하는 모습은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출신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상당수 중앙 아시아 출신 무슬림은 한국에 동화됐다. 일부 무슬림은 술도 마신다고 한다.

 한국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IS나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처럼 여기는 잘못된 시각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터키 출신인 알리(45)는 “쿠란에선 ‘부당히 한 명의 인간을 살해한다면 마치 모든 인류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커다란 죄’라고 쓰여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없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다처제가 성행하는 여성 억압적 사회라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한다. 한 여성 무슬림은 “이슬람은 오히려 여성에게 편한 종교”라며 “생리 중이거나 몸이 불편한 여성에겐 예배 의무가 면제되는 등 여성을 배려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일부의 잘못된 시각 탓에 한국의 무슬림이 자신들만의 문화나 전통에만 집착하다 보면 한국사회에서 섬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의 무슬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며 “무슬림은 한류와 우리의 성공 모델을 따라가려는 중동이나 동남아 이슬람 국가들과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의 서정민 교수는 “한국의 무슬림은 반이슬람 여론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며 “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꿀 수 있는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S BOX] 암살자 악명 이스마일파, 빙글빙글 춤 수피파 … 이슬람 종파 200개 넘어

이슬람은 똑같은 알라(신)를 따르는 종교지만 다양한 종파로 나뉜다. 세분하면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슬람 발전 과정에서 토착 신앙과 융합하고, 다른 종교의 영향도 받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 세계 무슬림의 80% 이상은 수니파로 분류된다. 율법을 숭상하는 수니파는 크게 하나피·말리키·샤피이·한발리 등 4개의 법학파로 나뉜다. 한국인 무슬림은 대개 수니파로 분류된다. 수니파의 다음가는 종파는 시아파다.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를 정통으로 본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영적 능력은 사후 알리와 알리 후손들에게 계승된다고 본다. 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만이 영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은 시아파를 비드아(이단)로 간주한다. 시아파는 열두이맘파·자이드파·이스마일파 등으로 갈라진다. 일부 이스마일파는 중세시대 아사신(암살자)으로 악명을 떨쳤다.

 아랍어로 ‘탈퇴자’란 뜻의 카와리즈파는 만민 평등주의를 강조한다. 흑인 노예라도 독실한 무슬림이라면 칼리파(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피파는 이슬람 신비주의다. 수피주의자들은 춤과 노래를 통해 신과 하나가 되려 한다. 치마와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 무용수가 빙글빙글 돌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는 수피댄스로 유명하다.

 알라위파는 시아파의 알리를 숭배한다. 드루즈파는 윤회를 믿는다. 19세기 이란에서 시작된 바비파와 바비파를 계승한 바하이파는 석가모니와 부처도 예언자로 인정한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김정명 교수는 “이슬람은 ‘알라 외 신은 없다’는 한 가지 공통점 아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종교” 라고 말했다.

글=곽재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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