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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법인세 인상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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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최근 ‘증세 없는 복지’가 한계에 부닥치고 복지 재원 확보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법인세 인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우선 법인세부터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정치권에서도 법인세 인상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런 한편에선 법인세 인상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경계론도 나온다.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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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인세율은 비정상이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법인세율 인상이 필요하냐는 질문부터 잘못됐다. 현재 낮은 법인세율이 어떤 경제적 합리성에 근거하느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마디로 법인세율이 지금 비정상이라는 게 핵심이다. 현재 법인세율은 소득세의 최고세율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소득이 1억5000만원 이상인 개인사업자엔 38%의 한계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같은 사업을 법인 형태로 운영하면 세율이 22%다. 소득이 2억원 이하인 중소기업인에게는 이보다 더 낮은 10%의 세율이 적용된다.

 법인세를 납부한 뒤 법인의 소득은 주주에게 경제적으로 귀속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배당소득의 72.1%가 상위 1%의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배당 시점에 주주에게 소득세가 다시 부과되기는 하나 대주주가 법인의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기업에 유보하기로 결정하면 이 부담은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법인은 대주주의 조세피난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법인소득에 대해 낮은 세율로 특혜를 주기 위해 특별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법인세 감세가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와야 한다. ▶경제성장 효과는 세수 감소로 발생하는 경제성장 저해 효과보다 커야 한다. ▶정책수단 투입의 기회비용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세 감세와 이로 인한 성장 효과 혜택이 모든 소득계층에, 특히 저소득층에도 나눠져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우리 현실에서 과연 충족될까. 최근 학계 연구 결과 경제성장이 저소득층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특히 법인세 감세가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법인세의 투자 유인 효과, 경제성장 효과, 그리고 외국자본 유인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지금 많은 투자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성격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 감면 명분은 더욱 약해진다.

 감세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의 투자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한 이치에 답이 있다. 법인 총비용에서 법인세 비용의 비중은 1% 정도에 그친다. 국세통계연보에 나온 2012년도 법인세 자료를 보면 국내 법인의 총수입은 약 4212조원, 총소득은 262조원으로 확인되며 총비용은 395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법인의 납부세액의 합은 40조원 정도였다. 법인세의 10%를 줄이거나 늘리면 법인의 총비용 중에서 0.1%포인트에도 미달하는 비용의 감소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모의 세부담이라도 줄이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이 때문에 투자에 대한 결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규모가 큰 다른 비용 항목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업체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대기업 현금보유액은 2014년 9월 말 기준 125조4100억원에 이른다. 2013년 말보다도 16조 4200억원, 15.1% 늘었다. 현금 보유액이 이렇게 많은 기업에 법인세 감면을 통해 유동성을 더 지원하는 것이 무슨 유인을 만들겠는가. 법인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의 주역이므로 세금을 줄여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한국 사회를 오래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및 고용 창출을 위한 법인세 감면은 매우 비효율적인 정책수단이다. 정부가 희생하는 세수 감소의 규모에 비해 이를 통한 기업의 비용 절감 효과는 미미해 투자 행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내 법인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에 비춰 국내의 법인들이 충분히 세부담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더 중요한 사실을 빼먹고 있다. 국내 법인이 획득하는 소득의 GDP 대비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실효세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법인세율 인하가 국제적인 트렌드인가. 명목세율은 그렇지만 실효세율은 그렇지 않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은 명목세율을 내렸지만 조세 감면을 동시에 줄여 실효세율은 그다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게 정답이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법인세 인상은 경제 효율성 훼손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복지와 증세 논쟁이 법인세 인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증세를 한다면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법인세 인상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법인세는 기업이 내는 세금이고 기업은 개인보다 부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인기 영합적으로 법인세를 인상한다면 현재 무상복지로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을 조만간 다시 겪게 될 것이다. 법인은 기업의 성과가 주주, 근로자, 소비자에게 흘러가게 하는 도관(conduit)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인세는 기업 활동에 참여한 경제주체들이 부담하게 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원의 법인세가 부과되면 소비자가 약 20원, 근로자가 약 30원, 주주가 약 50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주가 부담하는 50원 중에서도 지분율을 고려하면 소위 부자라고 하는 대주주의 부담은 25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국제 간 자본의 이동성을 고려하면 대주주가 부담하는 몫은 더욱 작아진다. 결국 법인세가 인상되면 그 부담은 이동성에 제약을 받는 소비자, 근로자, 소액주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법인세를 인상해도 소득재분배가 개선되지 않는다.

 반면 법인세가 인상되면 경제의 효율성은 훼손된다. 법인세로 확보한 재원을 고스란히 무상복지의 수혜자에게 돌려준다 해도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모든 세금이 그렇듯이 법인세의 경우도 시장가격을 교란해 민간과 정부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공중으로 사라지는 손실이 발생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4대 무상복지(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연금, 반값 등록금)를 시행하는 데 드는 향후 3년간의 소요 재원은 약 85조원에 달하는데 이를 법인세를 통해 조달할 경우 총 사회적 비용은 151조원에 달한다. 가계로 이전된 복지 재원을 제외하더라도 66조원이라는 재원이 공중분해되고 만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기둔화로 소득세수와 부가가치세 수입이 줄어 정부지출을 유지하려면 추가적인 세율 인상이 불가피하게 된다. 결국 ‘성장둔화-세입기반 약화-증세’라는 악순환이 초래된다.

 자본의 특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법인세를 내려야 한다. 총 세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노르웨이에 이어 둘째로 높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법인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수익률이 높은 곳을 찾아 항시 움직이는 것이 자본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해 자본을 유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는 122억 달러로 싱가포르 637억 달러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고려하면 싱가포르가 우리보다 21배나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싱가포르 법인세율이 17%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규모가 형편없이 낮은 이유가 높은 법인세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투자는 법인세 부담 수준뿐만 아니라 고용의 유연성, 노동의 질, 규제 수준 등 다른 투자환경이 함께 고려된 산물이다. 따라서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세부담을 완화하고 다른 투자환경도 개선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법인세를 소득재분배의 수단으로 인식하거나 세수 확보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대는 지났다. 법인세는 기업에 대한 조세이며 대주주가 주로 부담하기 때문에 정의로운 조세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부담은 소비자, 근로자, 소액주주들의 몫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법인세율을 인상해 세수입을 확대하려고 할수록 세수입이 감소한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법인세를 소득재분배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경쟁적으로 세율을 인하하고 자본을 유치해 성장을 제고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법인세를 인하해 ‘성장-세입기반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공공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