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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인세율은 비정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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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법인세율 인상이 필요하냐는 질문부터 잘못됐다. 현재 낮은 법인세율이 어떤 경제적 합리성에 근거하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마디로 법인세율이 지금 비정상이라는 게 핵심이다. 현재 법인세율은 소득세의 최고세율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소득이 1억5000만원 이상인 개인사업자엔 38%의 한계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같은 사업을 법인형태로 운영하면 세율이 22%다. 소득이 2억원 이하인 중소기업인에게는 이보다 더 낮은 10%의 세율이 적용된다.

법인세를 납부한 뒤 법인의 소득은 주주에게 경제적으로 귀속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배당소득의 72.1%가 상위 1%의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배당시점에 주주에게 소득세가 다시 부과되기는 하나 대주주가 법인의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기업에 유보하기로 결정하면 이 부담은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법인은 대주주의 조세피난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법인소득에 대해 낮은 세율로 특혜를 주기 위해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법인세 감세가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와야 한다. ▶경제성장 효과는 세수감소로 발생하는 경제성장 저해 효과보다 커야 한다. ▶정책수단 투입의 기회비용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세 감세와 이로 인한 성장효과 혜택이 모든 소득계층에, 특히 저소득층에도 나누어져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우리 현실에서 과연 충족될까. 최근 학계 연구 결과 경제 성장이 저소득층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특히 법인세 감세가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법인세의 투자유인효과, 경제성장효과, 그리고 외국자본유인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지금 많은 투자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성격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 감면 명분은 더욱 약해진다.

감세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의 투자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한 이치에 답이 있다. 법인 총비용에서 법인세 비용의 비중은 1% 정도에 그친다. 국세통계연보에 나온 2012년도 법인세 자료를 보면 국내 법인의 총수입은 약 4212조원, 총소득은 262조원으로 확인되며 총비용은 395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법인의 납부세액의 합은 40조원 정도였다. 법인세의 10%를 줄이거나 늘리면 법인의 총비용 중에서 0.1%포인트에도 미달하는 비용의 감소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모의 세부담이라도 줄이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이 때문에 투자에 대한 결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규모가 큰 다른 비용항목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업체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대기업 현금보유액은 2014년 9월 말 기준 125조4100억원에 이른다. 2013년 말보다도 16조 4200억원, 15.1% 늘었다. 현금 보유액이 이렇게 많은 기업에 법인세 감면을 통하여 유동성을 더 지원하는 것이 무슨 유인을 만들겠는가. 법인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의 주역이므로 세금을 줄여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한국사회를 오래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및 고용창출을 위한 법인세 감면은 매우 비효율적인 정책수단이다. 정부가 희생하는 세수감소의 규모에 비해 이를 통한 기업의 비용절감효과는 미미해 투자행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내 법인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에 비춰 국내의 법인들이 충분히 세부담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더 중요한 사실을 빼먹고 있다. 국내 법인이 획득하는 소득의 GDP 대비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실효세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법인세율 인하가 국제적인 트렌드인가. 명목세율은 그렇지만 실효세율은 그렇지 않다. 80년대 이후 전세계 국가들은 명목세율을 내렸지만 조세감면을 동시에 줄여서 실효세율은 그다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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