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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반퇴시대, 자식에만 올인하면 노후가 불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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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나라 40대의 절반 이상이 자녀 교육비를 지출 1순위로 꼽았다. 반면 6.2%만이 노후자금 마련을 우선순위로 선택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서울·광역시 거주 성인 2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자식 교육에 올인하다 반퇴(半退)한 후 대책 없는 노후를 맞는 중년세대의 불행한 자화상이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40·50대의 과반수는 성인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취업난으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며 취업 준비 비용과 생활비를 대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은 중년세대의 노후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이미 주변에선 자녀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대는 데 여유자금을 다 쓰고 일용직에 나서는 노인세대를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부화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어미 거미의 운명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자식 교육만 잘 시키면 대부분 노후가 편안했다. 자녀들이 봉양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중년세대는 그런 기대를 아예 접는 것이 현명하다. 1980년대 우리나라 노인들은 노후 수입원 중 자녀의 도움이 70%를 넘었다. 지금은 30%로 낮아졌다. 현재 중년세대가 노인이 되는 미래엔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녀 도움이 거의 없어질 게 분명하다. 믿었던 국민연금도 이들이 살아 있을 때 바닥이 드러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53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계했다. 아득히 먼 장래 같지만 지금 40대가 80대에 겪게 될 일이다. 쌓아놓은 공적연금마저 없어지는 마당에 국가에 노인 생계를 지원할 재정여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개인이 현명하게 노후를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은 출산연령이 늦어지면서 은퇴가 다가온 50대 때 자녀 교육비 부담이 가장 커진다고 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른 한국의 40대는 지금처럼 교육비를 쓸 경우 반퇴시기인 50대에 가혹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40대의 가처분소득 중 교육비 지출 비중은 미국의 7배나 된다. 교육비 지출이 훨씬 적은 미국도 과도한 자녀 교육비 부담이 중산층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물며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 중산층의 미래는 더 어둡다. 지금 안정된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은퇴 후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빈곤한 노후를 맞지 않으려면 중년세대는 지출, 특히 교육비를 줄여야 한다. 교육비 비중을 소득의 20% 정도로 확 낮추는 게 필요하다. 자녀 교육비를 절약해 생긴 여유자금은 개인연금이나 자신의 교육비로 투자하는 게 좋다. 고령화로 지금 중년 세대는 교육-취업-반퇴-재교육-재취업-완퇴(完退)의 라이프 사이클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돼서도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려면 중년 때 인생 후반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결혼비용도 마찬가지다. 자식에 대한 의무감, 혹은 체면 때문에 노후를 위한 최후의 종잣돈을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