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핵제한협상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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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난항속에서도 2년간이나 지속되어오던 제네바의 유럽 중거리 핵미사일(INF) 제한협상회담이 23일 소련대표의 일방적인 철수로 무기한 유회됐다.
소련대표의 철수는 서독연방의회(하원)가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인 퍼싱Ⅱ의 서독배치를 승인한 다음날에 취해졌다.
이같은 핵협상의 결렬은 소련 중거리핵미사일공격의 양대 목표지역(서구·극동)의 하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깊은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소련의 철수 의도는 내년에 실시되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에 재출마할것으로 예상되는 보수강경노선의 현「레이건」대통령 재회을 방해하면서 지금 서구에서 거세게 일고있는 반핵운동을 격화시키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INF협상은 79년 소련이 신형중거리 핵미사일인 SS-20을 나토지역을향해 배치한데서 비롯됐다. 그 수는 총2백43기에 이르고 있다.
소련은 극동지역에서도 중공·일본과 한국을 향해 SS-20 1백8기의 배치를 끝내놓고 있다. 우리에게도 핵의 공포는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전략무기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SALT의 협상대상에서 빠져있는 이 중거리 핵미사일의 배치에 당황한 나토회원국들은 그해 12월 미국의 신형중거리 미사일 퍼싱Ⅱ와 크루즈미사일을 83년말부터 유럽에 배치하는 한편 소련과는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협상을 벌인다는 이중결의를 채택하여 79년11월30일부터 INF협상회의가 제네바에서 시작됐다.
그후 소련이 SS-20을 모두 철거하면 나토도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중지하겠다는 「레이건」대통령의 이른바 「제로 옵션」과 소련의 동삭주의를 놓고 회의는 난항을 거듭해왔었다.
서방측은 「연내합의미달-배치강행」의 방침을 밀고 나가고 소련은 서방안을 받아들이지 않게되어 결국 영국에는 크루즈미사일, 서독에는 퍼싱Ⅱ가 배치되기에 이른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항하여 대나토전의 발진기지이자 서독의 접경국가인 동독·체코, 그리고 미국본토를 쉽게 직격할수있는 기타의 지역에도 SS-20을 배치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이같은 쌍방의 움직임이 진행되어오자 서구의 핵배치 예정국가들의 반핵평화운동 세력은 연일 대규모의 반핵운동을 벌여왔다.
서구는 결코 미소의 핵대결정이 될수없다는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지난달 15일부터 서독에서는 「반핵행동주간」이 개시됐고 이것이 효시가되어 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에서도 반핵집회와 시위가 잇달았다. 그중 최대규모는 본의 40만명의 시위대였다.
이러한 반핵운동은 서독의 퍼싱Ⅱ배치를 계기로 더욱 가열될것은 뻔한 일이다.
미국은 소련대표의 일방적인 철수에 대해 이미 예상했던 전술적인 제스처라고 보면서 곧 회담장에 복귀할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우리로서도 제네바의 INF협상이 속개되어 유럽 핵규제가 타결되고 이어서 동북아의 핵제한 협상도 이루어져 핵공포가 세계적으로 제거되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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