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업은 이스라엘-시리아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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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베이루트를 「중동의 파리」, 레바논을 「중동의 스위스」라고 부르던 유럽인들의 말은 이제 옛 사전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베이루트는 매일 계속되는 자동화기의 불뿜는 소리와 폭발연기 속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됐고 경기도만한 레바논국토는 외국군과 무장단체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신음하고 있다. 베이루트에 「제마옐」대통령이 이끄는 중앙정부가 있지만 상징적인 존재일 뿐 실제 통치력은 발휘 못하고있다.
75년 레바논내전이래 아랍평화군 명목으로 주둔하고 있는 3만명의 시리아군은 베카계곡 동북쪽 일대를 계속 장악하고 있고 작년6월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구실로 레바논에 들어온 이스라엘군은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계속 주둔, 이라와디강 이남을 장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레바논에서 외국군, 즉 시리아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는 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스라엘군 철수는 사실상 기약할 수 없다.


레바논북쪽 트리폴리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아라파트」PLO의장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아라파트」의 운명과 PLO의 장래를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 싸움의 결과는 PLO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장래, 나아가 아랍권의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아바논」에 들어와 반「아라파트」를 돕고 있고, 게다가 최근에는 작년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때 팔레스타인민족을 돕겠다고 들어온 이란민병대까지 파괴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더우기 지난달 23일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는 미해병대와 프랑스군 막사에 대한 자살폭발사고 후 미국과 프랑스까지 본격적인 군사활동을 벌이고 있어 레바논사태를 둘러싼 중동 정세는 더욱 얽히고 설켜 어떤 해결방안이 나서지 않는 한 폭발될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레바논사태는 내분에서 시작되어 국제정치의 대결장으로 변모했으며 그 소용돌이 속에서 레바논만 서서히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레바논을 둘러싼 중동정세는 크게는 미소의 대결, 작게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대결로 압축시킬 수 .있다.
79년말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한 소련은 시리아를 교두보로 삼아 중동에 더욱 깊숙이 세력확장을 해왔다.

<석유 노리는 소련>
이 같은 소련의 음모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석유, 즉 경제적 이익이 무진장한 중동을 자기 세력권에 넣겠다는 것
미국의 생각은 미소핵대결에서 교착상태, 즉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진 70년대 중반이후 소련의 전략이 제3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전제아래 「힘의 미국」을 부르짖고 「레이건」행정부가 등장한 후 한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레바논을 중동평화 및 미국이익방어의 시험대로 삼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미국 중동정책의 기본이 되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의 삼각평화기축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것과 연결된다.
레바논사태해결의 열쇠는 역시 시리아가 쥐고있다. 왜냐하면 「아사드」시리아대통령의 「대시리아」(Greater Syria) 구상이 오늘날의 복잡한 레바논사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라아가 「아라파트」 반대세력을 돕는 것도, 그리고..베카계곡을 계속 장악하면서 레바논안의 회교게릴라를 충동이는 것도 이 같은 「대시리아」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사드」대통령은 PLO안에서 대아스라엘 온건파 지도자인 「아라파트」를 몰아내고 강경파를 내세워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전위대로 삼고 팔레스타인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아랍권에서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려는 속셈이다.
또 레바논을 세력권에 넣는다는 것은= 이스라엘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충지역을 얻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궁지로 몰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아사드」의 야망은 크렘린의 전략과 맞아떨어져 레바논을 중동의 화약고로 만들어버렸다.
이스라엘은 국가안보를 위해 주변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힘의 미국」시험>
아랍의 바다 위에 절해고도처럼 떠있는 이스라엘은 남쪽 시나이반도쪽은 4차례에 걸친 중동전 끝에 내년3윌 중동평화조약을 탄생시킴으로써 안정되었고 동쪽 요르단쪽은 「후세인」요르단왕의 현상유지정책과 허약한 군사력으로 별 문제가 없으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게릴라들이 포진하고 있는 북쪽과 북동쪽이 계속 불안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작년 6월에 레바논침공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67년 제3차중동전이래 군사요충 골란고원을 장악하고있는 이상 시리아의 우회로인 레바논 남부만 장악하면 북쪽도 안심할 수 있게된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장악지역을 「사드·하다드」가 이끄는 기독교 민병대인 자유레바논전에 넘겨주어 친이스라엘 세력의 수중에 계속 남게 할 것이 틀림없다. 「사드·하다드」는 79년 자유레바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한바 있다.
이란의 「호메이니」옹은 이러한 복잡한 정세를 레바논에 대한 회교혁명수출의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는 듯하다.
우선 레바논에는 같은 회교분파인 시아파가 1백만명 이상으로 최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이 같은 계획이 용이하다.

<18개 종파가 반목>
더우기 레바논의 시아파는 전 인구의 4분의1이 넘는 세력이면서 국회격인 국민의회(정원1백명)에 19명의 대표밖에 보내지 못하는 소외를 당하고 있다.
「호메이니」옹은 작년 6월 이란민병대를 베카계곡에 파견한 이래 시아파게릴라들에 순교자정신을 무장시켜 회교혁명수출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미불평화유지군 막사 폭발사건, 그리고 이스라엘군 사령부 트럭폭발사건 등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이들 시아파단체 「아말운동」의 한 게릴라 분파인 「헤즈발라」(신의당)라는 과격파에서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군의 PLO파벌 싸움 개입은 아랍강경파 일원인 시리아를 돕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복잡한 외국세력의 레바논사태개입은 바로 레바논자체의 내분에 뿌리를 두고있다.
현재 레바논안에는 넓게는 기독교와 회교, 좁게는 40여 개의 사병집단이 서로 반목하며 사분 오열 되어있다. 18개의 각기 다른 종파가운데 대표적인 것만도 6개.
이들이 서로 분열되어 싸우는 한 중동에 이해관계를 갖고있는 각국의 개입을 막을 도리가 없을 것같다.
지난 11월1일부터 1주일간 제네바에서 열렸던 레바논민족화합회의에서도 레바논을 단일주권국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데만 의견의 일치를 보았을 뿐 그 이상의 진전은 보지 못했던 것도 모두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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