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폴 앨런, 인간 두뇌 수준 인공지능 개발에 도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5호 06면

AI2라고도 불리는 앨런 인공지능연구소(Allen Institute for Artificial Intelligence)에는 모든 것이 하얗게 빛난다. 벽뿐 아니라 내부에 놓인 가구, 카운터 등 모든 게 흰색이다. 1968년에 개봉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우주정거장 같다. 이 연구소는 앨런뇌연구소의 자매 연구소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지난해 문을 열었다.

[The New York Times] 인공지능연구소 ‘AI2’

지난해 문을 연 앨런 인공지능연구소 CEO인 오렌 에지오니 박사는 혁신적 웹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개발자다. 초기 검색엔진인 메타크롤러(MetaCrawler),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검색엔진 빙(Bing)의 여행 코너 기초가 된 페어캐스트(Farecast) 같은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그의 대표작이다 [사진 스튜어트 이셋]

과학적 감성 자극하려 내부는 하얗게
실리콘밸리는 여러 인공지능 분야 중에서도 신경회로망이나 기계학습에 주력해 왔다. 반면에 연구소 최고경영자(CEO)이자 전직 워싱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오렌 에지오니 박사는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는 전통적인 인공지능 연구만을 고집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의 역사는 1950~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구자들은 수퍼컴퓨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로직시스템을 이용하면 인간의 지능을 본뜰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에 인공지능 회사들이 줄줄이 상업화에 실패하면서 인공지능 분야의 겨울이 시작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인공지능 분야는 음성인식 기술, 시각 센서, 무인 자동차 등의 영역을 필두로 활력을 되찾고 있다. 강력해진 컴퓨터의 프로세싱 능력, 저렴해진 센서와 기계의 학습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구글·페이스북·애플은 기계 학습 분야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골드 러시’를 시작했다. 이미 놀라운 속도로 그들을 따라잡은 중국의 알리바바나 바이두 같은 경쟁자들도 이 행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순수한 인공지능을 구현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지오니 박사와 폴 앨런은 그들이 택한 길이 더 실용적이라는 믿음으로 사활을 걸고 있다. 새 기술이 미래에 끼칠 영향력도 아직 알 수 없다. 이들은 진짜 인간의 수준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에지오니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가 컴퓨터의 센서와 언어 구사 기술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진정한 인류 지능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아직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인 자동차 같은 멋진 상품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나 페이스북이 우리를 감시하는 데 쓰이는 나쁜 인공지능 기술이 먼저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에지오니 박사는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며 “미래에 어떤 상품을 내놓게 될지는 우리가 어떤 기술로 인공지능을 구현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지오니 박사와 앨런 둘 다 기술 자체와 기술 발전이 불러올 사회적·경제적 결과는 분리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사회적 임무를 더해 ‘공익을 위한 인공지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프로젝트 성패는 강력한 기계 학습 도구를 전통적 소프트웨어와 엮어 새로운 인공지능의 합성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IT 기업인 IBM은 인공지능 컴퓨터인 왓슨(Watson)을 의료진단, 무인 콜센터 등 양방향 대화 인식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상황에 적용시키고 싶어 한다. 에지오니 박사는 “이 프로젝트도 곧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증명되지 않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 의사 역할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지오니 박사는 “나를 진찰한 왓슨 인공지능 의사가 ‘에지오니 박사, 당신의 신장 한 쪽을 떼내야 하겠습니다’라고 진단을 내리면 아무리 엄청난 양의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내린 결론이라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AI 구현에 100년은 더 걸릴 것”
일부 기술전문가들은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가능한 기계들이 곧 출현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산업현장용 자율주행 트럭 제조사인 시그리드의 한스 모라벡 수석연구원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거의 몇십 년 동안 제자리에서 실랑이를 벌여 왔다”며 “완벽하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해 전 세계를 누비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에 AI2연구소의 앨런과 에지오니 박사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두 사람은 인간의 감각을 소유한 기계가 몇 년 안에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심을 품고 있다. 앨런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할과 같은 완전한 인공지능을 구현해 내는 데는 아마 적어도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사실 우리는 이제야 인간의 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에지오니 박사는 AI2연구소에서 인간의 지능을 차근차근 알아가는 학습시스템 구축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려고 한다. 취임 첫 해에 박사는 세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째는 컴퓨터가 이미지를 자동인식하는 컴퓨터 시각, 둘째는 실제 학교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논리 시스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 범람하는 정보들을 관리해 주는 시스템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학습 프로그램 선봬
이 가운데 인공지능 시스템인 ‘프로젝트 아리스토’는 정보를 모으고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진 학습 프로그램이다. 그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주어진 시험문제를 풀고, 심지어 인간 사용자와 문제를 논의하고 설명까지 할 수 있게 돼 있다. 지난해 9월 아리스토는 첫 결실을 보았다. 뉴욕주 4학년(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 과학시험을 치러 60% 정답을 맞힌 것이다. 이 시험은 도표와 그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 어느 정도 발달했다는 얘기가 된다.
 연구원들은 12학년(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 수준까지 점차 시험 난도를 높일 예정이다. 에지오니 박사는 “이 프로그램으로 학생의 할 일인 공부를 대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현존하는 검색엔진이나 왓슨 같은 시스템보다 훨씬 강력한 미래 업적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공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 ‘상황 이해’와 같은 영역은 시각이나 음성인식보다 구현하기 훨씬 어려울 것이다.
 AI2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들은 생각하는 기계의 새로운 세대를 창조해 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인공지능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구글의 리서치 담당 디렉터인 피터 노빅은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은 ’아직 이 정도 수준이라 참담하다’에서 ‘발전하니 무섭다’로 뒤집혔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