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공격할까 무서워" 미얀마 수도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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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군사정부가 43년간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 미얀마의 수도 양곤. 6일 오전 6시37분 정부 청사에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이삿짐과 공무원을 실은 수많은 트럭이 바로 매연을 내뿜었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수수께끼 같은 수도 이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32개 부처 가운데 9개가 이전했다. 새 수도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320㎞ 떨어진 산악지대인 핀마나에 있다. 군사정부가 수도를 이전한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나돌았다. 그러나 이날 짐을 싼 공무원들은 출발 하루 이틀 전에야 통보받았다. 이들은 허겁지겁 짐을 싸고는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다.

미얀마 정부는 하루 뒤 외국 대사관과 언론에 수도 이전 사실을 공개했다. 새 수도는 요새형 도시로 설계됐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1일 전했다. 새 청사 설계도에는 군 사령부.지하 벙커.주택단지.호텔.공항에 골프장도 하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새 청사는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전화.숙소.식수.식당 등 필수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군사정부가 갑작스레 수도를 이전한 배경에는 점성술이 작용했다고 IHT는 지적했다. 신문은 "미얀마는 점성술을 지나치게 믿는 미신 국가"라며 "영국에서 독립했을 때는 점성술에 따라 1948년 1월 4일 오전 4시20분에 기념식을 했다"고 밝혔다.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청사로 이날 오전 6시37분 출발한 것도 점괘에 따른 것이다. IHT는 "외부와 담을 쌓고 정글 전투만 해온 군인들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자 본거지로 돌아갔다"고 비꼬았다.

미얀마에선 몇 년 전부터 "양곤은 집권층 장군들에게 위험한 장소가 될 것"이라는 점성가들의 예언이 나돌았다. 군사정부는 이를 "미국의 침공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마침 반체제 인사들은 "이라크 다음은 미얀마"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 정부의 인권탄압 등에 대한 세계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미국 정부가 올 1월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에 포함시키자 군사정부는 화들짝 놀라 급히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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