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생물학은 21세기 지적모험의 1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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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학계의 맹장이다. 지식대중 사이에 도킨스 책 한 두 권을 접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그중 유명한 책이 '이기적 유전자'. 내용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인간은 생존 기계다"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種)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탈 것'내지 기계에 불과하다는 주장…. 문제는 많다. 그러면 인간은 바지저고리냐? 인간을 둘러싸고 철학이 뱉어놓은 우아한 설명이란 과연 무효일까? 이른바 유전자 결정론을 둘러싼 논쟁이다.

도킨스의 또 다른 주저는 '눈 먼 시계공'.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반(反)다윈주의자 및 창조론자들에게 신경생물학.분자생물학.동물행동학을 넘나드는 과학적 근거들을 예로 들어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논증하는 묵직한 '논리의 펀치'가 화려하다. 확실히 다윈의 진화론 개념은 많은 오해와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핵심은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이다.

어떤 종이 진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다가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느닷없이 다른 종으로 빠르게 진화한다는 것이다. 아직 논란이 많은 가설이지만 대진화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주장한 대표적인 지지자가 '다윈 이후' '풀하우스' '시간의 화살' '판다의 엄지' 등을 쓴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그는 더할 나위없는 진지함과 훌륭한 글솜씨를 자랑하는 특급과학자로도 유명하다.

리처드 도킨스와는 진화의 단위와 속도에 관해 수십년간 논쟁한 라이벌 사이다.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주장하여 진화의 기본개념을 바꾸기도 했다. 진화론 확신범인 것만은 분명한 그는 인간의 오만함을 꾸짖는 것이다. 굴드와 달리 진화란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균일설이 있다.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도킨스다.

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 분야의 또 다른 맹장은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통섭' 등의 저술을 남긴 에드워드 윌슨. 윌슨에게 생물학이란 학문의 제왕. 철학의 자리를 넘보는 최고의 '통섭 학문'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설왕설래 중이라는 지적설계론은 뭐지?". 쉿! 엄정한 학문세계에서 지적설계론은 거의 유사(類似)과학, 즉 사이비 취급을 받는다. 어쨌거나 지금 시대 최고의 지적 모험이 펼쳐지는 멋진 신세계의 공간이 생물학인 것만은 분명하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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