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검사결과 못잖게 환자 의견도 중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21면

환자가 호소하는 주관적 증상과 객관적 검사결과가 충돌한다면 어느 쪽을 따르는 것이 옳을까. 많은 이들이 객관적 검사결과를 위주로 향후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첨단기계가 찾아낸 검사결과가 들쭉날쭉한 환자의 증상보다 정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의 목적이 수혜자인 환자의 궁극적 만족에 있다고 본다면 환자의 주관적 증상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대표적 사례가 척추 디스크다. 디스크란 질병이 지닌 패러독스 중 하나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검사란 첨단검사에서 척추 사이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와 있음에도 환자는 별로 아프지 않은 경우다.

반면 조금 밖에 튀어나오지 않았음에도 환자는 꼼짝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아픈 경우가 있다.

과거엔 전자의 경우 여지없이 수술을 선택했다. 디스크가 튀어나왔으니 칼로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수술 후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의사가 분명 수술은 잘 했는데 환자는 여전히 아픈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정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척추관의 크기와 모양이다. 척추관이란 머리에서 꼬리까지 25개의 척추를 상하로 관통하는 신경의 통로다.

이곳이 선천적으로 좁거나 둥근 모양이 아닌 경우 디스크가 조금만 튀어나와도 신경이 잘 눌리게 되므로 심하게 아프다. 반면 이곳이 넓고 둥근 경우 디스크가 많이 튀어나와도 신경이 덜 눌리게 되므로 아프지 않게 된다.

둘째 근육의 발달 차이다. 척추는 앞쪽의 복근과 뒤쪽의 신전근육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러한 근육이 발달할수록 척추에 가해지는 충격은 줄어들게 된다.

요통이나 다리 아래로 뻗치는 통증 등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디스크 증상은 척추관의 크기와 모양, 근육의 발달 여부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가장 정확한 결과다. 결코 주관적 통증이란 이유만으로 무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디스크 환자의 수술을 결정할 때 MRI 사진에서 디스크가 얼마나 튀어나왔는지 보다 환자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증상에 더욱 주목한다.

모든 것이 기계 위주로 돌아가는 현대의학의 추세를 감안할 때 필름에 찍혀나온 검사 결과보다 환자의 목소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의사도, 환자도 모두 알아야겠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