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우편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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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느새 한해의 저녁이 오는가.
신문을 퍼니 미주내 각지역별 송년파티 예정일이 가끔씩 눈에 띄고 고국에서의 선편 연하우편물의 접수날짜도 예고되어져 있다. 카드안의 기입은 열다섯자 이내여야 한다는 한정에 잠시 눈길이 가 꽂혔고 꼭그리해야만 하나 .몇자 더적어 넣는다고 뭐 글씨가 무게가 나갈까보냐 싶은 공연한 투정도 갖는다.
십여년전.
이곳에 와있는 친구에게 수필집 몇권을 보내고자 서울의 중앙우체국엘 갔다.
우체국안은 장날처럽 붐볐고 한정도 없이 기다리고 기다린 그 지루한 순서가 갑자기 술렁술렁 헝클어졌다. 써넣은 내용이 굳이 열다섯자 이내여야만 한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해온 카드를 찢고 다시 읽고 법석이었다.
물론 나도 그들중의 하나였으며 가까스로 풀통 차례가와 터진 봉투를 다시 땜질하고나니 애초에 공들여 봉한 카드는 몰골이 말이아니어서 속이 상했고 허둥거린 하루가 짜증도 났지만 「몰랐던」내 탓이거니 참고 참아 밖에 나서려니 손에는 땀이 배고 달리 몹시도 마음은 곱아오던 그 기억이 오늘 새롭다.
하기야 서양사람들이 흔히들 그러하듯 이름두어자 사인하고 말면 그 한정이란 것도 오히려 넉넉하다 할수있겠다. 진작에 대부분의 카드란 것이 으례껏 근하신년이니, 즐거운 성탄과 새해복많이 받으라 적혀 있는 것이고 보면 굳이 더 보태어쓸말 조차 없을것 같다.
하나 그런말 다 말고 보내고 받는이의 마음과 마음끝이 이어지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골라서 쓰다보면 그한정이란게 벽이 될수도 있을 것임을.
어느 한 경우 나도안녕 너도안녕 그럼안녕이라고 쓴이가 있었다.
안녕도 좋지만 햇살같은 반가움보다는 어쩐지 김이빠진다는 느낌이 더했었다.
기껏 카드속의 여백을 다채워 써본들 몇자나 더쓰랴싶다.
어제 오늘 그사이- 10년이 흐른 아직껏 내겐 야박스럽게 느껴지고있는 그한정이란 것이 정작 우리네 체신살림엔 피치 못할 문제가 되는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고국의 국력이나 국민소득이 키큼에 비례하여 잘 보이지않는 부분까지에도 넉넉한 살핌이 있어주길 바람하여 본다. <38572 MONTEREY STERLING HTS, MI. 48077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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