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떡국잔치 광고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미주중앙

입력

준비한 음식 모자라면
"왜 우릴 차별하냐" 고성

넘쳐도 처치하기 곤란
조용한 행사로 바뀌어

"널리 알리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전혀 안 알릴 수도 없고."

설날(19일)을 전후로 잔치를 했거나 준비 중인 한인단체들의 고민이 크다. 노인과 불우이웃을 위해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내고 싶어 광고를 하려고 해도 욕을 먹을까 두려운 탓이다. 괜히 알렸다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도 벌어지면 낭패가 이만저만 아니다.

"잔치한다고 광고했다가 준비한 음식 이상으로 사람이 몰리면 그걸 어떻게 해요. 200명분을 준비했는데, 300~400명이 오면 큰 일이죠. 떡국이 모자란다고 야박하게 돌려보낼 수도 없고, 뒤늦게 음식을 준비하자니 타이밍이 늦고…."

실제로 한 한인단체는 지난해 설날 떡국잔치를 널리 알렸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다시는 광고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는 설날이고 하니, 누구라도 와서 한 끼 식사를 하자고 했어요. 한인타운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평균 인원을 어림 삼아 200명 정도의 음식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웬걸요, 아마 노인분들만 400명 이상 왔을 거예요. 그 많은 사람이 떡국을 달라고 하죠, 못 먹은 사람들은 '차별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난 16일 설날 큰 잔치를 한 LA한인타운 노인 및 커뮤니티센터(이하 노인센터)나 오늘(19일) 노인센터에서 설맞이 경로잔치를 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LA협의회(이하 LA평통)도 비슷한 경험을 한 탓에 조심스럽다. 잔치 소식에 소일거리를 찾던 동네 노인들이 전부 몰리면 분명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센터도 조용하게, LA평통도 조심스럽게 잔치 소식을 알렸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신문사에도 '잔치 전까지 기사화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을까.

'충분히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치도 않다. 한 관계자는 "음식이 모자라도 문제지만 넘쳐도 처치 곤란해요. 손님이 적정선을 넘어서면 접대할 장소나 인력도 문제가 돼요"라며 자선행사를 하는 여러 한인단체들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 향토단체는 광고글에 슬쩍 '초청'이란 말을 삽입했다. '200명분의 떡국을 초청 손님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하면 내용을 아는 사람들만 온다는 것이다. 설사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더라도 많지가 않아 행사진행에는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들 입장에서는 한인단체들 처사가 치사하기만 하다. 모처럼 명절잔치에 가서 친구를 만나 음식을 먹고 수다도 떨 수 있어 좋은데, 알리지도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니 야속하다. 그래도 씩씩한 한인 노인분들은 웃으며 말한다. "안 알려줘도 알음알음 찾아들 간다고. 명절 분위기 나는 곳이 그래도 거기 뿐인 걸 어떡해…."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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