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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노인 대상 성폭행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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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경로당의 할머니 한 분이 쑥 뜯으러 갔다가 젊은 청년에게 겁탈을 당했는데 그 할머니가 청년 손을 덥석 잡으며 ‘복 받을껴’ 했대. 다음날 그 얘기를 들은 다른 할머니들도 모두 쑥 뜯으러 갔다나.”

 언제였던가. 누군가 유머랍시고 한 얘기다. 웃다 보니 슬그머니 괘씸했다. 아니 그럼. 나이 든 할머니들은 젊은 청년이 겁탈해 주길 기다린다는 얘기야 뭐야. 그 유머 땜에 괜히 오해하고 할머니에게 덤벼드는 젊은이들 나타나면 어쩌나. 말이 씨가 된다더니. 우려했던 바로 그런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발견된 여행가방 속에 들어 있던 할머니 시신. 평소 아들처럼 대했던 청년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됐다. 강북구에서는 폐지 줍던 70대 노인이 성폭행 흔적이 남은 나체 상태 시신으로 발견되었 다. 노인 성폭행은 평소 잘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를 기피하는 약점을 알고는 반복해서 성폭행하기도 한단다. 황당했던 그 유머같이, 성범죄자들 머릿속엔 정말로 할머니는 성폭행에 그리 큰 상처를 입지 않으리라 생각하나. 그저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라는 건가.

 피해 노인들. 노령인 관계로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당한 후에도 자식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결국 자살하는 노인까지 있다. 성적 수치심 때문만이 아니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 전체가 무너지고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무서운 거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는 1.8배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493건이나 된다. 5% 미만의 신고율을 생각해보면 심각한 수치다.

 일반적으로 노인을 성적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범죄자들은 거부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할머니가 그 범행 대상이 되는 거다. 자기보다 힘없는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 이제부터라도 노인을 장애인이나 아동과 마찬가지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광주지검 목포지청에서는 ‘민들래’라는 여성 노인 성보호 프로그램을 만들어 ‘평생 가슴에 묻어둘 뻔한 성 피해 사례’들을 듣고 가해자들을 검거하고, 성범죄 예방과 홍보 강연도 한다고 한다. ‘민망해서 덮어두셨나요? 들어줄 사람이 없으셨나요? 밝은 날이 올(來) 때까지 돕겠습니다’의 줄임말이라나.

 이번 설 명절. 고향에 혼자 사시는 할머님께 만약을 위해 예방법이나 대처방법이라도 일러드리고 오면 어떨까 싶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