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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도발자들을 관타나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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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베트남전에서는 베트남인 150만 명과 미국인 5만 명이 희생됐다.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트남전은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두 외세에 의해 이용되고 왜곡됐다는 점에서 거대한 비극이었다. 만약 이라크에서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맞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면 이라크전은 비극이되 의미 있는 비극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특유의 정치적 수동성 탓에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이 강제로 참견했고, 이는 이라크인들의 저항을 촉발했다. 1920년 영국이 이라크를 위임통치하게 됐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까지 미군 작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3만여 명, 이라크인들 간의 종파 분쟁으로 희생된 사람은 2만6000여 명이라고 한다. 미군과 연합군의 사망자 수를 빼고도 이렇다. 이라크인들은 미군과 연합군에 이라크에서 싸워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콜린 파월 국무장관 비서실장의 말처럼 '은밀한 음모'를 꾸민 자들이 있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그리고 이들을 도운 리비 등이다. 전쟁의 명분을 쌓기 위해 백악관이 증거를 수집한다는 사실은 당시에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 '…하더라' 수준의 음모 이론 취급을 받았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2003년 초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은 유엔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파월 주장의 근거가 됐던 거짓 정보 생산에 이탈리아가 얼마나 연루됐는지를 조사해 왔다.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위해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증거'는 이탈리아 정보기관 언저리에 있는 브로커들이 날조한 결과였다. 영국에 정보가 건네졌으나 영국은 사지 않았다. 프랑스도 외면했다. CIA에도 건네졌으나 '쓰레기'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백악관은 대환영했다. 마침 필요로 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를 구입, 워싱턴으로 보내 백악관의 정보가 맞았음을 재확인시켜 줬다.

부시 행정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숨졌는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해야 할 명백하고 중대한 전략적 이유가 있었다면 거짓말하는 대신 이를 당당하게 밝혔을 것이고, 국민은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블레어 총리는 전모를 알았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1년쯤 전인 2002년 7월 MI6의 수장이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위해 정보와 사실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알려 줬기 때문이다.

결국 후세의 역사학자들이 추악한 파문의 진상을 밝히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미국인들은 군인병원에 입원한 군인들과 희생된 이라크인들이 워싱턴에 있는 몇몇 인사의 음모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워싱턴 인사들 중 몇몇은 복역 중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자. 이왕이면 관타나모 기지가 좋겠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