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가 왜 시끄러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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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종 단계에 이른 추곡수매가격과 수매량의 결정문제가 다른해 보다 훨씬 경직된 분위기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추수기에 비가 자주 내린 것만 빼고 금년은 날씨가 좋아 모든 농작물이 풍작을 이루었다. 그 대신 값은 많이 떨어졌다. 양파 같은 것은 3만6천t을 목표했으나 수확량이 4만5천t을 넘는 바람에 값이 폭락했다. 보리도 대농이었으나 하곡수매가가 동결되는 바람에 대농을 실감하지 못했다. 고추·마늘등 가을 작물도 마찬가지다. 과일은 10∼20%가 더 열려 값이 20∼30%나 떨어졌다. 이제 농민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추곡수매다. 그러나 막상 정부는 추곡수매의 가격과 물량을 작년 수준으로 동결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추곡수매 문제는 25일 국회 경과·농수산위 합동회의에 이어 정부·여당 연석회의와 청와대회의 및 국무회의를 거쳐 금주 내에 곁말이 날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동결」이 바뀔 가능성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농수산부는 보고 있다. 정부의 동결설명은 여러가지다.
우선 물가와 영농비가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25일 국회에서 여야의원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은 얘기이지만, 물가의 경우 도매물가는 9월 현재 작년 동기 보다 0.4%가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도 2.3% 밖에 오르지 않았고 특히 쌀 1섬의 생산비는 3만8천3백18원 밖에 안돼 작년수매가 5만5천9백70원으로 사줘도 1만7천6백52원씩이나 남는다는게 정부 주장이다.
또 이미 양곡관리기금적자가 1조2친4백억원이고 추곡수매후 연말누계는 1조5천3백억원을 넘어 통화량증가등 안정기조에 큰흠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과 같은 쌀 7백만섬을 사들이려면 7천4백억원이 드는데 양특자금여유는 2천1백억원뿐이므로 부족액 5천3백억원을 꾸려대려면 매우 빡빡한 사정이라고도 말한다.
또 현재만도 정부보유 양극이 쌀1천50만섬등 총1전4백30만섬이 되므로 예상수매량 7백만섬을 합치면 2천1백만섬 이상이 쌓이게 되니 이같은 재고부담 위에 어떻게 수매량을 늘릴수 있겠느냐는 설명도 하고있다.
이밖에 금년들어 창고 하나 짓지 않고 있다가 수매가 가까와지니까 창고가 모자라는 지역의 양곡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 소란을 피우면서 창고부족도 수매물량 동결 이유의 하나로 내밀고 있다.
정부설명의 시비와 농민의 납득여부를 떠나 과연 동결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문제가 남는다.
쌀자급을 위해서는 일반미 보다 수량이 2O%정도 높은 신품종 벼의 재배면적을 늘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량면에서는 뒤져도 가격이 좋은 일반벼를 심고자하는 농민을 신품종 벼쪽으로 돌리게 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수매가와 물량을 보장해야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 신품종 쌀은 정부에서 수매해주지 않으면 수확기에 싼값으로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아 농민은 상당한 손해를 본다는 사실도 정부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61년이래 정부가 막대한 양특적자를 내가면서도 수매를 계속해온 목적은 바로 이같은 쌀자급과 도농간 소득격차 해소가 아니었던가.
물가에 급급한 나머지 동결을 강행할 경우 종국적으로는 증산 기반을 거부하고 농가소득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불가피해진다.
농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의 저물가·저노임 정책을 뒷받침하는 저농산물 가격을 감내해왔다.
정부의 증산운동과 멸구극성등으로 비료 및 농약대가 더 들어간 것은 물론, 농촌생활수준이 높아지는데 따라 문화비·주거비·교육비등도 도시 못지 않게 증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로물가를 내세워 농산물 가격, 특히 수매가 인상을 허용치 않고 있는 것은 결국은 전체 물가를 위해 농산물 가격이 더 희생을 해달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농가수지의 어려움은 농가교역조건의 악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물가안정엔 농산물값 안정에 큰 기대를 했는데 그 물가안정 때문에 농산물 가격지지가 다시 희생되는 것이다.
공산품등은 기술혁신소득도 가능하고 경쟁제한행위, 모델변경등에 의한 가격의 실질인상의 길이 있다. 그러나 농산물은 그것이 불가능하며 농가소득은 완전경쟁에 의한 농산물판매와 정부수매가 유일힌 방법이다. 따라서 수매가 문제는 경제적 측면 외에 도농간의 격차해소등 정치·사회적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또 수매때마다 정부가 들먹이는 양특적자를 살펴봐도 같은 형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적자는 생산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발생한 게 아니다. 소비자와의 공동이익 때문에 생긴 것이며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은 정부양곡을 소비자에게 헐값에 판데서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수매가 결정방법은 일본과 달리 공식적인 산출방식이 따로 없다. 어차피 해마다 생산비·물가상승률·전체물가·경제사정·민심등을 고려한 정책가격으로 결정돼 왔다.
점점 떨어지는 식량자급률과 끊이지 않는 곡물도입, 심각해지는 이농, 늘어나는·농가부채등 식량자급과 농가소득 증대를 가로막는 누적된 문제들 외에 금년에는 특별히 수확기의 쌀값등 각종 농산물값 하락현상이 두드러진 것을 감안한다면 추곡수매는 「동결」 보다는 「정책적배려」 가 어느때 보다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추곡수매로 풀려나간 돈은 농촌의 구매력이 된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다. 물가나 재정형편 때문에 많이 올리는 것은 바랄수 없지만 그래도「동결」은 다소 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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