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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에 세상을 떠난 페레로 로쉐 초콜릿 대표

중앙일보

입력

[사진 출처=페레로 그룹 홈페이지]

 
이탈리아 최고의 부호이자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 페레로 그룹의 대표인 미켈레 페레로(89)가 ‘밸런타인데이’에 세상을 떠났다.

14일(현지시간) 페레로 그룹 측은 미켈레 페레로 회장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자택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미켈레 페레로 회장은 가문의 가훈인 ‘일하고, 창조하고, 주어라’를 현실에서 실천하며 레드오션인 제과시장에서 기존 상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아이디어 개발, 그리고 꼼꼼한 품질관리와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전 세계적인 대성공을 이룬 파워피플이다.

명품 초콜릿인 페레로 로쉐를 만드는 이 회사는 이탈리아의 제과업체다. 제과는 첨단 제품도, 기술집약형 제품도, 아이디어 상품도 아니다. 게다가 갈수록 브랜드를 크게 따지지도 않는 편의상품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개별 제과점이 아닌 대량으로 유통되는 경우 더더욱 그런 경향이 농후한 편이다. 동네 제과점부터 대량생산하는 다양한 제과회사들까지 겹쳐 그야말로 경쟁자도 수두룩하다. 블루오션이 아니고 레드오션인 것이다. 하지만 페레로는 이런 레드오션에서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올라서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한꺼번에 깨버렸다.

제과점 출신의 페레로 가문이 경영하는 가족기업인 이 회사는 유럽 최대 제과업체로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페레로 가문을 세계 30번째 부호로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과자 제조사’란 별명을 붙였다.

미켈레 페레로는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 주의 조용한 소도시 알바에 있는 페레로의 본사에서 전 세계 38개의 법인과 18개의 공장을 운영하며 2만1500명의 종업원을 지휘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알바는 페레로사의 발상지다. 이탈리아 밖의 공장 운영과 영업을 관장하는 페레로 인터내셔널사는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런 글로벌 큰 손이면서도 미켈레 페레로는 철저한 가족 기업으로 운영했다. 이 회사는 창업부터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알바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 페레로(1898~1949)와 부인 피에라와 함께 창업했다. 피에트로는 동생 조반니에게 판매를 맡겼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미켈레가 물려받아 2세 경영을 시작했다. 미켈레는 부인 마리아 프랑카와 함께 페레로사를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메가 기업으로 키웠다. 전후 이탈리아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해외에 제과 공장을 지어 페레로사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시킨 인물이 바로 미켈레다.

현재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이 페레로 로쉐 초콜릿이다. 회사 창업주 집안의 성에다 과자가 바위 모양이라고 해서 프랑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로쉐를 결합한 이름이다. 페레로 로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 때문에 연인들 사이에 마음을 전하는 선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밸런타인데이에는 전 세계에서 선물용으로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밸런타인데이는 물론 생일, 성탄절, 부활절, 어머니날 등등에서 빠져선 안 되는 선물로 자리 잡고 있다. 공항 면세점에서도 해외여행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한국에선 몇 년 전부터는 편의점까지 진출해 그야말로 계절에 관계없이 일 년 내내 대량으로 팔리고 있다.

이 상품에는 미켈레의 노하우가 숨겨져 있다. 이 상품은 마케팅 면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우선 고급스러운 개별 포장이 성공 요소다. 고급 헤이즐넛 초콜릿을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색 종이에 포장하고 바닥에 접시 모양의 밑받침까지 붙였다. 그 다음은 맛이다. 바싹한 식감과 입에서 살상 녹아드는 부드러움, 그리고 너트의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동그란 모양의 이 초콜릿 과자는 한가운데 볶은 헤이즐넛과 헤이즐넛 크림이 들어있으며 그 바로 바깥쪽을 얇은 웨하스가 감싸고 있다. 다시 가장 바깥은 헤이즐넛 조각이 든 밀크초콜릿이 둘러싸고 있다. 복잡한 구조는 정성스럽게 만든 명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미켈레는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경영을 맡던 당시 아버지를 도와 이 초콜릿 과자의 개발을 주도했다.

사실 이 상품의 개발 뒤에는 눈물겨운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물자부족이 만든 궁여지책이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 초콜릿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버지 피에트로는 상상력과 야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부터 세계적인 초콜릿 장인 겸 상인의 꿈을 키웠다. 당시 초콜릿을 비롯한 과자와 케이크는 보존성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소규모 제과업체나 소매점에서 소량으로 만든 것을 그때그때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맛이 뛰어난 제품도 수출은커녕 먼 동네로 가져가서 팔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니 제과점은 동네 상점 이상으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피에트로는 이러한 이탈리아인들의 초콜릿 구매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좋은 제품은 지역을 뛰어넘고 유럽 각국으로 팔려야 한다고 믿었다. 심지어 유럽도 뛰어넘어 전 세계에 맛좋고 질 좋은 이탈리아 초콜릿을 공급하면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에트로는 보존성이 좋은 최고급 초콜릿 제품을 개발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판매하는 전략을 고안해냈다.

보존성이 좋은 고급 초콜릿을 대량 생산해 유럽 전역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피에트로는 1942년 제과점 근처에 제과 개발실을 차렸다. 초기에는 헤이즐넛과 코코아로 만든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초콜릿을 개발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에는 물자난이 극심했다. 특히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버터와 코코아 분말은 열대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구하기가 힘들었다. 바다는 영국이 장악하고 있어 이탈리아는 해외에서 원료를 실어올 수가 없었다. 이런 시기에 종전 뒤를 예상해 제과 개발실을 만든 것 자체가 페레로 가문의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을 잘 보여준다.

초콜릿 개발실에 코코아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 것은 군인에게 실탄이 떨어진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틀니를 끼면 된다는 게 피에트로의 과감한 방식이었다. 그는 코코아에 자신의 본거지인 피에몬테 지역 특산물인 헤이즐넛을 섞어 양을 늘렸다. 그러자 외려 헤이즐넛의 맛과 향이 가미된 독특한 풍미의 새로운 초콜릿이 탄생했다. 재료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초콜릿과 헤이즐넛의 퓨전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해 성공신화를 이뤘다. 손자병법에 나타난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를 구절을 현실화한 셈이다. 역경을 기회로 이용하는 데 비상한 재능을 보인 페레로 가문의 DNA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훈이자 사훈인 ‘일하고, 창조하고, 주어라’에 걸맞은 방식이었다.

피에트로가 본격적인 초콜릿 생산에 나선 것은 1946년이다. 이탈리아 상무부로부터 기업등록증을 받았으며 초콜릿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피에트로 부부와 아들 미켈레가 전면에 나서 회사를 경영했다. 이 부자가 개발한 초기 상품은 페레로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경영자 수업만 하다 선대가 세상을 떠나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영 상속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가족기업은 어린 시절부터 온 가족이 함께 경영에 매달리고 가장이 형식적으로 대표를 맡다가 가장이 세상을 떠나면 다음 대가 대표직을 이어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경영 상속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2대 경영인이 된 미켈레는 아버지의 장인 정신에 현대적인 기업가의 열정을 보태 1950~70년대 페레로사를 세계적인 제과 업체로 키웠다. 그는 사람들이 초콜릿을 즐기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페레로사는 초콜릿 제품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과자를 개발, 생산해 판매했다. 그는 우선 이탈리아 시장을 공략했고 이어서 유럽 여러 나라 시장을 공략했다. 1956년에 독일, 1958년에 프랑스 공장을 세워 현지 생산에 나섰다. 그 뒤 1969년 미국 뉴욕에 페레로 USA의 문을 열면서 북미 대륙에 진출했다.

이 시기에 내놓은 제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누텔라다. 빵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형 헤이즐넛 초콜릿이다. 처음에는 빵 위에 얹어 먹는 고체형 초콜릿이었으나 이를 도시락으로 가져간 어린이들이 빵은 먹지 않고 초콜릿만 쏙 빼먹자 그런 일이 없도록 발라 먹는 초콜렛 스프레드를 개발한 것이다. 누텔라는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으나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콜릿만 발라먹는 것보다 값이 훨씬 싸면서 헤이즐넛이 들어가 맛은 더욱 좋다. 페레로 그룹의 효자 상품이다. 초콜릿 브랜드인 킨더와 입 냄새를 가시게 하고 졸음을 방지하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민트 브랜드인 틱택도 이 시기에 나왔다.

재미난 것은 이 회사 상품의 브랜드 이름이다. 이탈리아 기업인데도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과감하게 브랜드 이름으로 쓰고 있다. 페레로 로쉐의 ‘로쉐’는 바위를 뜻하는 프랑스어이고, 몽셰리는 프랑스어로 여성이 애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킨더는 어린이를 가리키는 독일어다. 틱택은 영어권을 비롯한 어느 언어권에서도 잘 통하는 다국적 이름이다. 이 때문에 이 상품들이 이탈리아가 원조인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에선 미국 제품으로 여기고 영국에선 프랑스 브랜드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독일에선 심지어 자국산으로 여기기도 한다. 글로벌 전략이다.

이 이탈리아 초콜릿 업체가 진정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회는 1982년 찾아왔다. 페레로 로쉐를 론칭한 것이다. 이 브랜드로 다양한 초콜릿을 유럽 각국에 팔기 시작했다. 이 프리미엄 초콜릿은 선물용으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유럽을 찾은 다른 대륙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한 아름 사들고 가기도 했다. 1985년에는 미국 대륙에 상륙해 동부 일부 지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몇 년 새 미국 소비자들에게 최고급 초콜릿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페레로 로쉐 브랜드는 확장을 거듭했다. 주 무대는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으로 옮겨갔다. 미국인이 드디어 품격 높은 이탈리아 초콜릿에 빠진 것이다. 2001년에는 미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페레로 초콜릿을 담은 모둠 제품으로 출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선 로쉐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미켈레는 이러한 초콜릿 제품을 바탕으로 페레로 가문의 수장으로 군림하면서 세계제과산업을 좌지우지 해왔다. 미켈레 페레로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 그리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날의 글로벌 메가 제과업체 페레로를 낳았다. 열심히 일하고, 상상력을 현실에서 일구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최상의 상품을 주는 정신을 미켈레의 근본으로 평가된다. 브랜드마다 고유의 컨셉트를 지니고 있으며 최상의 품질과 맛, 그리고 적절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만든 페레로 가문의 가훈 ‘일하고, 창조하고, 주어라’를 현실에서 실천한 것이다. 창조적인 파워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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