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참사…어떠한 말로 이 충격을 표현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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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웬일일까 버마에서 일어난 비극의 참상을 들었을때 계속되는 텔리비전의 방송을 끄고 나는 느릴 걸음으로 정원으로 내려갔다.
충격적이다, 슬프다. 이런 감정은 이미 무감각해 있는 탓일까. 단지 내의식을 휩싸도는 깊은 수령의 안개는 짙은 의문이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회의가 떫은 감을 씹은듯 한아름 무게로 느껴왔다. 왜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
의문과 회의 이것만이 오늘의 사고를 메우고 있어서 그 어떤 판단과 선택마저도 가늠할 수 없이 암담했다.
가시에 찔려 아팠던 손에 총탄이와 박혀도 그저 그런듯 아픔과 사건에 무디어진 감각의 훼손.
실상 그 어떤 정치적 관계의 맹목과 살의와 술수가 팽배해진다 해도 이 세상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근원을 생각해 볼때 둔감해지는 감각의 훼손은 인간 상실 그 자체라고 보아도 좋다.
아름다운 나라 한국, 조용한 나라 한국의 아침이 텔리비전에 언젠가 방영될때 정말 신비한 아름다움이, 내 나라에 영험한 기운이 떨치고 있다는 자긍심이 무리없이 들었다.
오늘의 계속되는 참혹한 사건은 무엇인가 그 영험한 기운을 거역하는, 순리를 배반하는 인간의 잘못은 아닐까하는 빈곤한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혹자는 테러리즘의 맹목이라고도 하고, 공산주의의 광기의 극치라고도 부른다.
맹목은 언제나 더큰 맹목을 낳고, 광기는 반드시 정당한 보수의 파멸은 가져오는법.
그러나 그러한 어휘에도 무엇인가 흡족하지 못한 허기가 도는 것은 이번 사건을 둘러칠 그 어떤 적합한 말과 글이 아득하기 때문이리라.
그저 막연하게 이럴 수가 있나 라는 경악과 흥분은 오히려 일상어가 되어버린 느낌이 짙은 오늘. 그 말은 이제 낡았고, 그 말이 가지고 있는 가치도 소멸된 듯 하다.
이때일수록 차분히 새로운 가치의 성찰과 자기일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타이르는 일도 새로운 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의 말은 그것이 전부다. 그 이상의 말을 찾기도 전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선택보다 사건이 앞지르고 있는 실정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번 버바사건에서의 그비열한 폭력을 귀한 사람들을 잃은 여러 의미의 엄청난 상실이라고 한다면 그 폭력의 주체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 소외지역에 추방되는 폭력을 자행한 셈이다.
『반문화와 질서의 국외자의 이상의 뿌리없이 존재하는 것이며, 반항적인 자아의 명령을 향하여 지도에 표시안된 여로를 떠나는 것』 이라고 「노먼·메일러」는 말한바 있다.
선과 악을 함께 지닌 이원성을 낙관적으로 인정한 인류의 역사는 인간성과 야수성의 근원적인 갈등에 인간성이 언제나 우위에 서 있었다는 그 이유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의 폭력 살상행위는 그 어떤 인간성 이념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는 말과 언어이하의 응징이어야 마땅하다.
『강건너 불보듯』이란 속담이 나와 정말 무관하지 않듯 오늘의 긴급하고 불안한 사태가 아침시간 한잔의 따뜻한 차를 마시는 일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소시민적 안정도 깨뜨려놓고 있다.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둘이서 셋이서 주고 받는 대화의 열기, 또 흥분 그러나 그것은 시원한 결론없이 침묵으로 돌아가는 느린 발걸음이다. 무엇일까 그러나 생각해야 할것이다. 무작정 행동의 반경을 넓히는 일보다 생각의 범위를 확대, 진정한 출발의 입장에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고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나, 이 나라의 새로운 의식을 정립하는 이유에서라도 얽힌 실오리를 풀어내듯 이 시점에서 우리의 대처방식도 반성의 자세로써 숙고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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