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두 장 더 넣어? 말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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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 눈 흘기셔도 할 수 없어요. 저, 가늘고 길게 살렵니다. 많으면 좋은 걸 누가 모르나요. 하지만 며칠 전엔 자재과 김대리, 오늘은 총무과 박대리, 내일 모레는 동창 녀석 결혼이라니까요. 매번 다섯분씩 모셨다가는 저 손가락 빨아야 해요.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재밌었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옆 부서 박 대리가 인사를 왔군요. 그런데 저를 보고 웃는 게 좀 이상한 것도 같고…. 설마 비웃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아! 무슨 얘기냐고요? 실은 제가 저 친구 결혼식 때 '석 장'만 냈거든요. 그래요, 부조금 3만원. 회사 전체 회식 때 소주잔 몇 번 부딪친 인연밖에 없는 친구였으니, 그 정도면 적당한 셈 아닌가요? 에이~,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안 편하죠? 자리 때문인가? 실은 제가 얼마 전에 팀장이 됐거든요. 그래도 명색이 이제 간부인데, 아무리 다른 부서라고 해도 '다섯 장'은 냈어야 하는 걸까요. 다른 데 가서 '짠돌이'라고 흉보면 어쩌죠?

사실, 저 결혼 부조금이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결혼을 좀 일찍 했거든요.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요. 그러니 친구들한테 부조금 받을 생각은 꿈도 못 꿨죠. 친구들이라고 해봐야 휴가 나온 '군바리' 아니면, 자기들 담뱃값도 못하는 복학생이었으니까. 그러면서 밥이랑 술은 어찌나 축내던지…. 거기까지도 좋아요. 그런데 이 녀석들 자기 결혼할 때는 "친구야, 부조 넉넉하게 하리라 믿는다" "몇 명이 돈 모아서 TV 한 대 사줘라" 등등 어찌나 주문이 많은지. 뭐, 꼭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본전 생각'도 나고…. 이해하시죠?

회사 생활하면서도 마찬가지죠. 친하지도 않았던 거래처 사람이나 회사 후배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보내오면, 일단 '이건 또 얼마짜리야'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 축하해 줘야겠단 마음은 뒷전이죠. 세금 고지서 받은 기분이라니까요. '속물' 같은 제가 싫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마누라한테 타 쓰는 한 달 용돈이 50만원인걸. 봄.가을로 절반만 부조로 나가보세요. 밥 사먹기도 빠듯하다니까요.

게다가 멀쩡하게 돈 내고도 체면 구기는 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지난 주말에도 학교 후배 결혼식에 갔었거든요. 눈치보다 3만원 했죠. 그런데 제 동기들이 전부 5만원을 냈다지 뭡니까. 2만원을 따로 더 줄 수도 없고, '쪽' 팔려서…. 지난 봄 아내랑 회사 후배 결혼식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제 딴엔 입 하나 달고 갔다고 5만원을 냈죠. 그런데 며칠 후에 들리는 소리가 그 호텔 밥값이 1인분에 4만원이라지 뭡니까. 한동안 그 친구 피해다녔어요. 앞으로는 결혼식 장소까지 봐가면서 봉투를 만들든가 해야지….

그런데 부조금 때문에 이렇게 머리 아픈 사람, 혹시 저 하나뿐은 아니겠죠?

중소기업 홍보팀장 김인걸(41)씨의 하소연이다. 그런데 인걸씨, 너무 걱정 마시라. 결혼 부조금 때문에 골머리 썩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것 같으니.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함께 전국의 남녀 861명에게 결혼 부조금에 대해 물어봤더니 거의 10명 중 9명이 "부조금 부담에 봄.가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번 주 week&, 이 말도 많도 탈도 많은 결혼 부조금 얘기 좀 해보려고 한다. 이번 가을, 부조금 때문에 당신의 주머니는 얼마나 가벼워졌는가.

글=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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