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칭「큰손」여인들이 여권신장의 결과일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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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선왕조때, 선조란 임금에게 인빈이라는 후궁이 있었다. 성은 김씨이고 양화당이라 불렀다.
이 양화당마마가 아들을 낳으려고 황랍5백근으로 초를 만들어 금강산일만이천봉마다 불을 밝히고 장안사와 유점사에 불공을 올리게 했다.
이것이 소위「황랍5백근 사건」이라 하여 우리나라 여성사에 남는「큰손」의 표본 같은 사건이다.
요즘사람들의 안목으로 본다면 웃음거리도 안되는 이야기일는지 모른다. 세상도 달라지고 여권도 그만큼 신장된 것이다.
장여인이 축을 낸 6천억원이니 7천억원이니 하는 돈으로 초를 만들어 불을 켜댄다면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커녕 팔도강산이 모두 불바다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또 터졌다. 은행의 지보도장이란 것을 마음대로 찍어댄 여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우리들 평범한 시민은 어떤 비판을 가할 자격도 없을 것 같다고 내 주위의 한 주부는 말했다.
대학교수인 친구도 이제부터는 피상적인 관찰자로 사실만을 한귀로 들으며 세상을 살아가기로 작정했단다.
장여인이니 이씨할머니니 하는 여인들이야말로 현대여성들의 분열적인 성격을 입증하는 표본들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논의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피상적인 방관자로 냉담한 눈길만을 던지고 있다면 바야흐로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넘쳐나는 갖가지 여성문제는 어떤 왜곡된 방향으로 그 흐름을 찾게될 것인가. 지금 여성들의 세계도 다른 사회구조와 마찬가지로 급작스런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진화·발전, 갖가지 혁명적인 개조를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변화의 시대에 여성들이 올바른 기초를 닦아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초가 든든하고 믿음직하다면 앞으로의 여성세계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여인 사건이나 은행지보사건을 여성의 사회적 진보가 가져온 반갑잖은 수반현상이라 본다면 위험한일이다.
또 이것이 여권의 신장과 더불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란 인식이 심겨지는 것도 모처럼 싹트고 있는 여권에는 불리한 그림자를 던지게 된다.
현대의 여권은 억압되었던 생명의 원천이 해방을 맞았을 때 나타나는 놀라운 필연.
나이애가라폭포는 몇줄기의 실개울이 그 원천이라 한다. 그것이 비록 몇방울의 물이라 하더라도 폭포가될 원인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 미미한 원인이 쌓이고 쌓여 천지를 진동하는 대 폭포가 된 것으로 현대에 들어 신장되고있는 여권이 바로 그 폭포이며 폭포여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남자」나「여자」가 아닌「인간」만이 존재하는 능력의 시대가 올 것이 자명하다.
여성의 능력이 향상되고 여성의 인간성이 내면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은 우리 여성들이 환영해 마지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일련의 사건으로 여성 그 자체의 이미지가 흐려진다면 우리 여성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여인 사건이나 영동사건 등을 우리여성들이 과연 피상적으로만 보고 넘겨야 할 것인가.
여성 스스로가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깊이 반성해보며 좋은 방향, 좋은 길을 찾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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