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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 아직도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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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지사에 따르면 북한이 차기 6자회담에 참석할 것이 분명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도 6자회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북 전력 공급 제안은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반가운 '당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북한의 회담 태도에 따라 밀고 당기면서 채찍과 당근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도 북한 지도자에 대한 비난을 거두고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과 더 자주 접촉하며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종전의 입장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최근의 성과를 볼 때 북한 핵협상이라는 잔은 반쯤 채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앞길엔 난제가 산적해 있다. 기본 원칙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존하는 핵시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없다. 검증 방법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이 진심으로 협상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핵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에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공동성명 발표 직후부터 북한은 경수로를 먼저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핵협상의 진전과 무관하게 남북한 간 경제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협이 6자회담을 진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모호하다. 이 점에서 중국의 경우도 별다를 게 없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중국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자회담에서 유연성을 보였던 부시 행정부는 최근 뜻하지 않게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부시 대통령은 대법관 지명 문제 등을 놓고 일부 동료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부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해 당선됐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예산 정책에서부터 중동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갈등이 일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응▶톰 딜레이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기소▶리크게이트가 잇따르면서 위기도 깊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지금의 6자회담이 1994년 제네바 기본협정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북한 핵협상의 '잔'은 반이 채워진 것이 아니라 나머지 반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앞으로의 외교적 협상도 힘들어질 것이다. 북한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미국.일본.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위해 사전에 의견을 잘 조율해 효과적으로 공동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