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처벌법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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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은 어떤 것이건 규제나 처벌대상을 구체적이고도 확연하게 규정해 주어야한다. 처벌규정이 경미하다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경미한 사범을 다루는 경범죄처벌법과 같은 법률일수록 행위와 처벌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해줄 필요성은 한층 절실해진다.
경범죄처벌법을 위반하는 사람, 또는 실제로 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 사람은 이렇다할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한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내무부가 성안,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끌게 한다.
물론 현행법은 서민들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용어를 담고 있어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고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개정안의 내용이 국민생활을 한층 죄고 불편스러운 쪽으로 짜여져 있는 점은 유감스럽다.
법률이 많아지고 그 내용이 번잡해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윤리적 규제만으로 제어되어야 하고, 또 될 수도 있는 행위를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일은 명랑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가령 경기장 안에서의 야유·고함·선동 따위만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처벌을 받을 만큼 「심한」정도인지를 가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복잡하고 좌절에 찬 일상생활의 틀에 갇혀 있다가 경기장 같은데서 한바탕 고함쳐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일은 한 개인뿐 아니라 한 사회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다지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행위를 법률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운동경기의 관람을 마치 무슨 오키스트러의 청중처럼 엄숙한 자세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고 해서 지나친 말일까.
개정안은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을 배회하는 자』를 『일할 능력은 있으나 다른 생계의 길도 없으면서 취업할 의사 없이…』로 고쳐 놓았다.
일본의 「경범죄법」을 보면 제1조4항이 『생계의 길도 없으면서, 일할 능력은 있으나 취업할 의사를 갖지 않고, 또 일정한 주거를 갖지 않은 자로 제방을 배회하는 자』라고 되어 있는데, 하필이면 우리의 개정안이 일본이 35년 전에 만든 법률내용을 왜 그대로 따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64년에 제정된 현행 경범죄처벌법은 일본의 경법죄법을 거의 그대로 따온 것이다. 『본법의 적용에 있어서 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제4조 「남용금지」조항은 그래서 두개가 똑같다.
일본의 경우 이 조항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우리의 경우 남용금지조항이 제대로 지켜진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슨 단속기간 때면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인권을 소홀히 다루는 사태가 벌어져 왔음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 부작용은 한마디로 법의 모호성에서 연유한다. 법률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분히 사법경찰관의 손에 맡겨지기 때문에 법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경범을 처리하는 즉결심판은 판사의 일손부족으로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과속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부당국자들의 법을 과신하는 행태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법이나 제도가 범죄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해도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 안역한 발상이다.
일본이 35년 전에 만든 법률을 그대로 따오고, 이제 또 그것을 손질한다는 건 어쨌든 궁색해 보인다. 조문의 보완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삭제할 부분은 삭제하는 등 신중한 재조정작업을 퍼야할 까닭은 그런데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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