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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화끈한 부산시민, 가난한 시민 야구단 참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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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부산 자이언츠 협동조합 설립기획단이 지난 6일 부산 YMCA 빌딩 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 참가한 시민은 스무 명 정도에 그쳤다. [중앙포토]

야구 팬이라면 구단주가 되는 걸 한번쯤 꿈꾼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실질적 구단주인 이장석(49) 대표와 NC 다이노스의 김택진(48) 구단주는 판타지를 현실로 이뤄낸 이들이다. 최근 부산시민들이 구단주가 되겠다고 나섰다. ‘부산 자이언츠’라는 협동조합을 설립해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돈도 사람도 없지만 국내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야구단을 사겠다며 지난 6일 공청회도 열었다.

 꽤 많은 롯데 팬들이 부산 자이언츠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팀 내분이 폭발하면서 롯데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단을 시민이 소유하고 시민 뜻대로 운영하자는 발상은 여기서 나왔다. 롯데 자이언츠는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더 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들의 청사진에는 ‘구단주의 꿈’이 담겨 있다. 조합원 30만명이 30만원씩 총 900억원을 출자할 것이며 매년 100억원의 수익을 내서 유소년과 은퇴 선수를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현실’은 빠졌다. 매각 의사가 없는 롯데로부터 어떻게 팀을 인수할 건지, 연 100억원씩 적자를 내는 다른 팀들과 어떻게 다르게 운영할 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

 부산 자이언츠는 그들이 모델로 삼은 축구단인 FC 바르셀로나가 될 수 없다.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지역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상징이기 때문에 약 19만명의 조합원이 연회비 177유로(약 22만원)를 낸다. FC 바르셀로나는 협동조합이지만 조합비를 빼고 중계권료·입장수입·마케팅수익을 합한 4억8460만 유로(약 6000억원·2013-14년 기준)로 운영된다.

 일본 유일의 시민 야구단 히로시마 도요카프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원자폭탄을 맞은 히로시마에 희망을 주기 위해 프로야구단이 1950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매년 재정난에 시달리다 시민들의 모금으로 해체 위기를 수 차례 넘겼다. 결국 1968년 히로시마 시민들이 마쓰다자동차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마쓰다자동차는 구단주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투자만 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자마자 히로시마를 떠난다. 극성 팬들이 매일같이 야구장을 찾고, 생필품을 사듯 구단 물품을 사는 덕분에 소폭의 흑자를 내고 있다. 메이저리거 구로다 히로키(39)가 연봉을 80%나 깎여가며 히로시마로 돌아온 건 시민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히로시마식의 운영은 국내 환경에서 더 어려울 뿐 아니라 화끈한 야구, 공격적인 투자를 바라는 부산시민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지난해 롯데 구단은 ‘전문가의 함정’에 빠졌다. 구단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코칭스태프의 영역을 침범했다. 나중엔 선수단이 구단을 압박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반대로 부산 자이언츠는 ‘훈수꾼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기획단 인사 대부분이 “내가 하면 잘할 텐데…”라며 꿈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공청회를 마친 한승협 부산여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2차 공청회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능을 꿈꾸는 이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부산 자이언츠 설립이 몽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교한 계획과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있어도 그들이 가는 길은 험난하다.

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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