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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24년 전 떠난 정태, 미국 야구 심장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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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에 입양된 로버트 레프스나이더는 지난 3년 동안 뉴욕 양키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약했다. 올해는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리고 있다. [AP]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라구나힐스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야구·농구·풋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2년 미국 프로야구 명문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0.318, 홈런 14개를 기록했다. 양키스는 로빈슨 카노(33·시애틀 2루수), 브렛 가드너(32·양키스 외야수)처럼 그가 양키스 팜(farm·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착실히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레프스나이더(24·Robert Refsnyder)다.

 그는 1991년 3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나 5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독일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가 그를 안아줬다. 여섯 살이 됐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누나, 왜 우리는 부모님과 다르게 생겼지?” 세 살 많은 누나 엘리자베스가 답했다. “우린 입양됐으니까.” 누나도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였다. 그때부터 그는 미국인 부모를 더 많이 사랑했다. 로버트 레프스나이더의 또 다른 이름은 김정태다.

 레프스나이더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처럼 생겼다. 그의 이름엔 한국이 없고, 그의 얼굴엔 미국이 없다. 그는 20년 넘도록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네 이름과 얼굴은 왜 이리 다른 거지?” 지난 8일 뉴욕타임스가 레프스나이더에 대한 기사를 썼을 때도 그의 야구보다 입양 스토리에 더 비중을 뒀다.

아버지 클린트는 지난 2003년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아들을 데리고 가서 메이저리그의 꿈을 키워줬다. [AP]

 어릴 때부터 그는 인종차별적인 말을 듣고 자랐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지만 미국인들은 그를 레프스나이더가 아닌 김정태로 대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한국 부모님도 이해한다. 날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려 애쓰셨을 것이다.”

 아버지 클린트는 아들에게 스포츠를 가르쳤다. 룰 안에서 경쟁하고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걸 깨닫게 했다. 야구에서 뛰어난 야수였고, 풋볼에서 영민한 와이드리시버였던 아들은 농구만큼은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 열일곱 살이 돼서야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겼다. 클린트는 대학 시절 농구선수였다.

 레프스나이더는 “아버지를 이기고 나서 깨달았다. 인생에서 쉽게 얻는 건 없다는 것을. 내겐 뛰어난 재능이 없지만 대신 훌륭한 부모님이 있다”며 “난 입양됐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럽다. 난 레프스나이더라는 이름으로 야구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레프스나이더는 2012년 애리조나대학 시절 대학야구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당시 그가 한국에서 입양됐다는 현지 기사가 나왔다. 이후 각종 입양단체들이 그에게 인터뷰와 강연을 요청했다. 그는 항상 흔쾌하게 응했다. 레프스나이더는 “나도 훗날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전후(戰後) 반세기 동안 한국은 거대한 ‘아이 수출국’이었다. 1953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 어린이 15만명이 국외로 입양됐고, 이 가운데 10만명 이상이 미국으로 갔다. 레프스나이더는 91년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 1800여 명 중 하나였다. 최근 몇 년간 국외 입양이 줄었다고 해도 연 200~300명의 입양아가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홀트아동복지회의 김병수 사회복지사는 “한국이 세계적 저출산국이 됐지만 입양 보내야 할 어린이들은 여전히 많다. 정부가 최근 국내 입양을 늘리는 지원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가정은 한국인 입양을 매우 선호한다고 한다. 성실하고 정이 많아서다. 레프스나이더 부부도 엘리자베스를 먼저 입양한 뒤 한국에서 남자아이를 찾았다.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아이들은 대부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나 사춘기 때 필연적으로 인종차별 문제에 부딪힌다. 레프스나이더처럼 잘 극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삐뚤어지기도 한다. 미국 사회에서도 입양아 문제가 작지 않다. 따라서 아이를 보낸 한국도, 아이를 받은 미국도 입양아의 성공을 바란다.

 레프스나이더는 반듯하게 잘 자랐다. 다음주 시작하는 양키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가 양키스의 주전이 되면 우리는 그를 두고 “입양아 최초의 메이저리거” 또는 “그의 한국 이름은 김정태”라며 수선 떨지 모른다. 그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의 성공을 보며 박수칠 것이다.

 레프스나이더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한국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에게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레프스나이더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다. 그런데 한국 어머니를 만난다는 건…, (미국) 부모님의 감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의 고민을 어머니 제인이 모를 리 없다. 몇 년 전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난 너와 함께야. 네 생모를 만나면 그녀를 꼭 안아줄 거야. 그리고 ‘멋진 아이를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할 거야.”

김식 야구팀장

로버트 레프스나이더는 … ?

● 1991년 3월 26일 출생

● 키 1m86㎝, 몸무게 92㎏

● 아버지 클린트, 어머니 제인, 누나 엘리자베스(한국에서 입양)

● 라구나힐스 고교-애리조나대학교 졸업

● 2012년 대학야구 최우수선수

● 2012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가 지명(5라운드)

● 2015년 뉴욕 양키스 스프링캠프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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